
글로벌 제약사들이 '투약 편의성'을 높인 신약 개발에 조 단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복용이 편한 경구형 또는 장기 지속형 제형으로 전환해 환자의 투약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다. 이 흐름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빠르게 확산 중이다.
노보노디스크는 14일(현지시간) 경구용 비만치료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3조원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노보노디스크는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 셉터나(Septerna)와 최대 22억 달러(한화 3조731억원) 규모 독점적 제휴 및 라이선스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비만, 제2형 당뇨병 및 기타 심장대사 질환에 대한 경구용 저분자 의약품을 발굴해 개발, 상업화할 계획이다. 셉터나는 시초가 64% 상승하기도 했다.
GSK도 같은 날 미국 보스턴 파마슈티컬즈의 대사성 지방간염(MASH) 치료제 후보물질인 '에피모스페르민'을 최대 20억 달러(2조7902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경쟁약물은 매주 투여하는 반면, 보스턴 파마슈티컬즈 약물은 반감기를 연장해 매달 1회 피하주사로 투여한다. 현재 임상 3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도 단순히 효능 경쟁을 넘어 얼마나 쉽게 복용 가능한지를 핵심 경쟁요소로 삼고 있다. 특히 경구형, 장기 지속형 플랫폼, 제형 전환 기술 등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한미약품과 GC녹십자는 이날 공동 개발 중인 파브리병 치료제 'LA-GLA'가 임상1/2상 첫 환자 투여에 성공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임상에 돌입했다고 공개했다. 양사는 파브리병 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월 1회 피하투여 용법으로 공동 개발 중이다. 현재 대부분의 파브리병 환자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개발한 효소를 정맥주사하는 방식인 효소대체요법(ERT)으로 치료받고 있다.
이런 1세대 치료제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오랜 시간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과 함께 정맥 주입에 따른 치료 부작용이 있다. 이문희 한미약품 GM임상팀장은 “의약품 약효를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된 LA-GLA가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투약 편의성을 높이면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는 치료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고분자 결합 플랫폼인 랩스커버리를 통해 파브리병 외에도 월 1회 투여 가능한 비만·당뇨 치료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펩트론은 약물 반감기를 늘려주는 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 '스마트데포'를 개발해 지난해 10월 일라이릴리와 기술 평가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마트데포는 반감기가 짧아 자주 주사해야 하는 약물의 투약 주기를 늘려주는 기술이다. 원료와 제형에 따라 1~6개월 지속형으로 개발할 수 있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꾸는 플랫폼 기술인 'ALT-B4'를 기반으로 머크(MSD), 산도스 등과 대형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기술 보유기업 중 하나다.
셀트리온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를 자가 투여 가능한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꾼 '램시마SC'를 유럽과 미국에 출시해 투약 편의성 차별화에 성공했다. 램시마SC는 미국에서 신약으로 인정받고 판매 중이다. 결국 투약 편의성은 약효만큼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령 환자, 만성질환자, 소아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가 낮을 경우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제약사들은 동일 효능이라도 더 쉽게 투약할 수 있는 제형을 보유하는 것이 시장 지배력을 결정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