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원주민도 당한 '부동산 사기'…“가짜 국가에 1000년 임대”

계약 당사자 '카일라사(kailasa) 합중국'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도 못한 '종교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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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국가 '카일라사' 합중국 관계자(오른쪽 두명)가 볼리미아 원주민 부족과 계약을 맺으며 촬영한 사진. 사진=엘 파이스 캡처

남미 볼리비아의 원주민 부족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와 토지 임대차 계약을 맺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22일(현지 시각) 엘 데베르 등 남미 매체에 따르면 볼리비아의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 거주하는 바우레·카유바바·에세 에하 등 3개 원주민 그룹이 지난해 9~11월께 서울 면적의 6.5배에 이르는 3천900㎢ 규모 토지를 1000년 간 쓸 수 있도록 하는 임대차 계약을 했다.

해당 부족은 매년 2만 8000~10만 8000달러(약 4100만~1억 5800만원)를 받고 지상에서 지하까지 접근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모든 권리를 넘겼다. 계약서에는 해당 영토 내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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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3일 공개 행사에 참석한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왼쪽)과 카일라사 합중국 대표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인포바에 캡처

원주민들이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카일라사(kailasa) 합중국'. 언뜻 국가 이름처럼 보이지만 정식 국가이지도, 국가 지위로 인정받지도 못한 '종교 집단'이다.

매체에 따르면 자칭 힌두교 구루(영적 지도자) 니트야난다 파라마시밤이 세운 가상의 국가다. 스스로를 힌두교의 '신'이라고 부르며 교인을 대상으로 성적 학대를 일삼아 인도 수배 대상에 오른 국제 사기꾼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파라마시밤은 지난 2019년 에콰도르의 한 섬을 구입해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했지만 에콰도르 정부가 섬 매입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후스토 몰리나 CIDOB 대표는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성명에서 “카일라사와 관련된 자들이 수년 전부터 원주민 영토에 머물면서 일부 부족과 접촉한 것으로 최근에서야 확인했다”며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지난해 종교 관계자로부터 선물을 받는 사진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일부 원주민들이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상대 '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CIDOB은 원주민들이 개별적으로 '국가'를 사칭하는 집단과 거래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볼리비아 정부 역시 관련법상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설명했다. 야밀 플로네스 농업·토지개발부 장관은 “한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번 계약과 관련해 고소·고발이 접수되진 않았지만, 당국이 직권으로 조사 중”이라며 “이런 유형의 합의는 효력이 없으며, 원주민 재산 보호를 명시한 현행법률상 외국인은 아마존 지역 토지를 취득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한편, 남미 매체 인포바에에 따르면 이 사건을 보도한 엘 데베르 소속 기자는 바우레족 지도자로부터 “네가 누구와 엮였는지 모르겠다”며 비난을 받았다. 그러자 기자는 음성 파일을 언론에 공개했고, 바우레 지도자는 공개 사과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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