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소·부·장 2세 경영 '기대와 우려'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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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엔지니어링 용인 R&D센터. (사진=주성엔지니어링)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세대교체에 관심이 쏠리는 건 좁게는 회사의 연속성과 성장가능성 때문이나, 넓게는 국내 첨단 산업과 직결돼 있어서다. 1세대 창업주들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휴대폰(스마트폰 포함)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게 만든 주역이다. 기술·자본·인력이 모두 부족했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립했기 때문에 성장 배경이 다른 2세들에게도 '기업가 정신'이 물려질 지 관심이 쏠린다.

◇창업주와 다른 '2세'

창업주들은 한국에서 소부장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삼성전자가 D램 사업 진출 10년 만인 1993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에 올랐지만, 당시 공정 장비는 물론 금형까지 100%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소부장 기술력은 빈약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반도체 장비용 나사 하나도 못 만드는 나라'라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독자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고 회고한다.

창업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장을 개척, 자신들이 설립한 회사를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한미반도체 창업주인 고(故) 곽노권 회장이 미국·유럽·일본을 순회하면서 장비를 판매하고, 싱가포르·홍콩·말레이시아 반도체 전시회에서 기술을 소개하는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닌 건 유명한 일화다.

동진쎄미켐 창업주인 고 이부섭 회장은 1967년 서울 연희동 자택 연탄창고에 회사를 설립하고, 안방을 뜯어낸 자리에 실험 설비를 반입해 소재 개발에 매진했다. 1980년 법정관리라는 위기에도 발포제와 반도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PR)를 국산화했다. 이용한 원익 회장은 의료기기나 산업용 원료를 수입하는 원익통상에서 반도체 재료로 사업을 확장, 그룹을 연간 매출 2조5000억원 규모로 육성했다.

창업주와 달리 2세들은 회사가 성장 궤도에 안착한 뒤 비교적 풍족한 여건에서 성장했다. 창업주가 갖고 있는 사업에 대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2세에게는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경 차이는 기존 체제와 2세 경영 스타일이 달라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척박한 환경에서 창업해 맨손으로 회사를 일군 오너와 달리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2세들은 경영 마인드가 다를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같은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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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반도체 본사 1공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젊은 경영자' 새로운 바람 일으킬까

일각의 우려와 달리 소부장 2세 경영에 대한 기대감도 엿보인다. 젊은 감각과 창의력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실제 한미반도체는 곽노권 회장 아들인 곽동신 회장 체제에서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이고, 제우스도 창업주인 이동악 회장 장남 이종우 대표가 맡아 지난해 최대 영업이익을 올린 바 있다. 양사 모두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장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인 점이 주효했다.

파트론은 김종구 회장 장남인 김원근 대표가 사업 총괄을 맡아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파트론 최대 고객사는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로,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이외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삼성 의존도를 완화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원근 대표는 신성장 동력으로 전장용 부품, 센서, 반도체 패키징, 전자담배와 혈당계 등 전자제품 사업을 점찍고 확장을 시도 중이다.

김재경 인탑스 회장 장남 김근하 대표는 제조 생태계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인탑스는 스타트업에 제품 디자인·사업성 검토 등 컨설팅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사출금형 전문 기업인 인탑스가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면 생태계 활성화가 중요한 만큼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부장 2세 경영인은 새로운 분야에 능동적인 모습”이라며 “창업주가 사업 기틀을 다지고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했다면 2세는 창의적인 시선으로 신규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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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탑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2기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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