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플랫폼톡]법률AI, 정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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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혁 로이어드컴퍼니 대표

격변의 한 해가 저물었다. 2024년 국제사회는 정치·외교·안보·경제 등에서 굵직한 변화를 겪어내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산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기존 산업 질서가 통째로 흔들렸다.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세계적 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내며 고꾸라졌다. AI라는 거대한 물결에 올라타느냐 여부가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됐다.

기업의 기술경쟁은 한층 격화했다. 업무 자동화는 물론 인간과 협업까지 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가 나왔고, 대규모언어모델(LLM) 위주였던 생성형 AI는 행동 정보를 패턴화해 학습하는 거대행동모델(LAM)로 고도화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현실화했다. 특히 지난 해 9월 노벨상위원회가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에 순수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아닌 AI 연구자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AI가 세상을 이해하고 주도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자 일종의 '사건'이 됐다.

AI가 일상을 파고들면서 인간 사회와 가장 밀접한 법조계도 기술 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기록적인 한 해를 보냈다. 미국의 한 법률 전문지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사들은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지난 한 해 동안 50억달러(약 7조2975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33억7000만달러를 기록한 전년과 대비해 투자 규모는 무려 47% 커졌다.

리걸테크 시장이 해마다 비약적인 성장을 해나가면서 각국 정부도 다양한 지원 정책과 규제 완화를 통해 법률 시장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먼저 미국 유타주는 2020년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비변호사의 법률 서비스 제공을 허용하는 등 비전통적인 법률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미시건, 플로리다주는 변호사회가 법률 실무에서 생성형 AI 사용에 관한 권고안을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싱가포르 역시 리걸테크 산업을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보고, 정부 주도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TIR(Technology and Innovation Roadmap) 프로그램을 통해 리걸테크 기업에 대한 기술 개발 지원 및 자금 투자를 지원하고 있으며, SAL(Singapore Academy of Law)는 리걸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및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등 전체적으로 규제 친화적인 환경을 정부 차원에서 조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와 국회 내에서 AI와 리걸테크에 대한 논의가 일부 있기는 한 것으로 보이지만, 'AI가 법률서비스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정도의 공감대만 형성됐을 뿐이다. 아직까지 누구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변호사협회만이 단체 내규를 통해 법률소비자에게 직접 노출되는 대부분의 AI 법률서비스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형태의 법률AI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지, 그리고 그 효과는 법률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현재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AI 변호사 플랫폼 알법에 따르면 변호사 상담신청 신청에 앞서 GPT-4 기반 AI 진단 기능을 도입하자 변호사를 찾는 이용자 비율이 무려 312%가 증가했다. 이는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단순한 편견을 깨는 것을 넘어 AI가 법률시장 확장의 도구로서 이용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AI는 이제 현실이다.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 육성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관심과 사회적 합의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손수혁 로이어드컴퍼니 대표 sonsh@lawir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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