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가 면세 사업 체질 개선을 선언하면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일본 롯데 연결 고리를 끊겠다는 계획도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롯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지 주목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롯데면세점)는 올해부터 중국 보따리상(다이궁)에게 면세품 판매를 중단했다. 다이궁은 지난해 면세 사업 매출 5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고객임에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단행한 조치다. 호텔롯데는 다이궁에 수수료만 3분기 누적 약 4000억원을 지급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호텔롯데의 외형 축소와 IPO 계획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다이궁이 빠질 경우 매출은 절반 가까이 감소하게 된다.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이 3조796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출이 1조원 대까지 낮아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면세점은 호텔롯데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호텔롯데의 외형 축소도 불가피하다.
이는 지난 10년 간 추진과 철수를 거듭한 IPO 계획과 맞닿아 있다.
IPO 계획 핵심은 일본 롯데 연결고리를 끊는 데 있다. 롯데 지배구조는 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로 이어진다. 호텔롯데는 최대주주인 롯데홀딩스를 비롯해 광윤사, 자회사 군 일본 L1~L12투자회사 등 일본 롯데가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호텔롯데가 상장할 경우 일본 롯데 지분이 희석되고 롯데지주와 통합 지주사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후계자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지분 가치 희석을 위한 적정 기업가치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당시 15조원 안팎으로 평가 받던 호텔롯데 기업가치는 면세점 부진으로 지난 2023년 기준 3조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자체 사업을 기반으로 한 기업가치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만큼 기존 계획 실현 가능성도 극히 떨어진다.
호텔롯데는 지난 2015년 IPO를 신청했다가 이듬해 보류했다. 이후 경영 비리 수사, 중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국정 농단 사건,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추진을 미뤄왔다.
호텔롯데 IPO 선언 10년차에 접어든 롯데그룹이 보류를 넘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제시할 지 주목된다. 올해 정호석 대표 체제로 전환한 호텔롯데는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자산유동화에 매진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기존 호텔롯데에 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를 결합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그간 IPO 추진 과정에서 면세점 역할이 강조된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결정은 과거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추진 의지가 없다고 보여진다”며 “그룹 전반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