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보조금 상한을 제한해 온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도입 10년 만에 폐지되면서 통신 시장이 격변을 맞았다. 정부와 국회는 단통법 폐지가 시장의 자유경쟁 생태계를 복원시키고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체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여전하다. 10년간 시장환경이 달라졌고 구매 방식도 다양해졌다. 오히려 단통법 폐지가 알뜰폰 성장을 저해해 이동통신 3사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경쟁 유효성 제고와 구매부담 경감이라는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통법 폐지 자체보다 시행령과 고시 등 하위법령을 통한 정교한 보완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단통법 폐지로 이동통신사는 단말기 지원금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유통점의 추가보조금 상한(공시지원금 15% 이내) 규제도 사라진다. 번호이동, 기기변경 등 가입유형이나 요금제에 따른 지원금 차별 금지도 폐지된다. 이통사 각사 전략에 따라 자유롭게 지원금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선택약정할인 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소비자가 지원금 대신 25%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단통법 폐지에 따른 시장 관심사는 실질적으로 휴대폰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지와 고착화된 통신시장 판도 변화다.
우선 정부는 지원금 상한이 사라지면 통신사간 마케팅 경쟁이 활성화되고 단말 구입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통신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며 단통법 시행 당시인 10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이통 3사가 출혈 경쟁에 나설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지원금 경쟁이 이뤄질 제도적 환경은 마련됐지만 통신사가 예전처럼 가입자 뺏어오기 경쟁을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투자에 나선 상황에서 비용 투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입유형·요금제에 따른 지원금 차별이 가능해지면서 번호이동과 고가요금제에만 지원금이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는 통신요금에 비례해 지원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했다. 경쟁을 펼치더라도 공격적 지출보다는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을 유지하면서 보조금 지급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이다.
경쟁사 고객을 유치하는 번호이동에 지원금이 쏠리면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짧아질 우려도 있다. 이상우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자칫 불필요한 단말기 소비를 유도해 소비자 입장에서 가계통신비가 역으로 늘어날 소지도 있다”면서 “시행령과 고시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번에 신설된 제조사 장려금 제출 의무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린다. 이통사는 정부에 제조사가 제공하는 장려금 규모를 제출해야 한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유통점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은 일종의 판매촉진 수당이다. 일부는 유통점이 갖고 일부는 소비자에게 추가 지원금 용도로 쓰인다.
제조사 입장에선 영업기밀인 장려금 규모가 외부로 누설되면 해외 시장에서 가격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이는 장려금을 높이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반면 정부가 제조사 장려금 규모를 인지하게 되는 만큼 확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제출받은 장려금 자료는 제3자나 일반에 공개할 수 없도록 명시됐다”면서 “새해 초 갤럭시S25 지원금 경쟁이 향후 단통법 폐지 효과를 내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전자와 애플 과점 체제로 바뀌면서 제조사가 비용을 투입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말 경쟁이 사라지면서 장려금 비중도 크게 줄었다. 이성엽 교수는 “외산 단말을 적극 들여오거나 중고 단말 인증제 등 수요 분산 노력을 통해 단말기 경쟁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소 제조사 입장에서도 단통법 폐지에 따라 저가폰 중심 전략을 고수할 필요가 사라졌다. 중소 휴대폰 제조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보조금이 동일해 낮은 출고가를 내세워 공짜폰 같은 저가 전략이 유효했지만 앞으로는 보조금 차등에 따라 가격 대비 성능 중심으로 단말시장 경쟁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6개월내로 시행령을 완비하고 단통법 폐지 이후 시장 혼란과 부작용을 줄이는 데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단통법 폐지 조치가 너무 늦어져 과거같은 경쟁 생태계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단통법은 10년 전 혼탁한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면서 “극약처방은 단기적 효과는 볼 수 있지만 장기화되면 역효과가 난다. 단통법은 3년 일몰로 끝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번 단통법 폐지에 따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한 것은 성과로 꼽힌다. 법안은 방통위에 부당한 차별 금지 규정 등 건전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해 필요한 종합시책 수립과 실태점검 권한을 부여했다. 신민수 교수는 “다른 정부 부처와 규제 권한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