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로 '내란획책'과 '반국가행위'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거대야당의 내년도 예산안 감액 강행처리와 계속되는 탄핵소추안 발의 등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국민적 공감대 없이 계엄을 선택, 자신과 집권여당을 넘어 국가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10시23분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야당의 일방적인 감액 처리와 주요 관료와 검사에 대한 계속된 탄핵 시도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민주당은 재해대책 예비비 1조원과 아이돌봄수당 384억원,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 등을 삭감했다. 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진숙 방통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 등에 대해 잇따라 탄핵소추를 진행해왔다.
윤 대통령은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부 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 국가 예산 처리도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했다. 이러한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 77조 1항에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소야대 상황이 21대 국회에 이어 22대에 이어지면서 각종 입법, 예산 등이 저지되고, 국무위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 등에 대한 탄핵 시도가 계속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깔려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도 없이 일부 인사들과의 소통만으로 이뤄진 비상계엄 선포로 윤 대통령은 정치적 생명을 떠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기로에 서게 됐다. 야당이 추진하는 탄핵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레임덕(집권말 권력누수)은 기정사실이 됐다. 당장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진과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그간 공을 들였던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과 유럽, UN 등은 '민주주의를 응원한다'며 오히려 우리 국회의 계엄 해제를 지지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한국의 민주적 절차를 굳건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독일 외무부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의 상황을 큰 우려를 가지고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승리해야 한다”고 썼다. 스웨덴도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총리의 방한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