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플랫폼톡]리걸테크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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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넥서스AI 대표

작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 의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이다. 진단 장비는 날로 발전하고, 의료기기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 지며, 수술을 대행하는 로봇까지 등장했지만 의사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의료 장비는 의사를 대체할 수 없는 보조 수단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의사와 바이오테크 업체 간의 협업 관계가 분쟁 없이 잘 구축돼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넥서스AI 대표로서 1년 반 동안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법률 인공지능(AI)을 개발하며 변호사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대체 불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법률 AI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소통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사건의 프레임을 제시하며, 증거 검토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시키고, 논리와 근거를 기반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호사를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뢰인의 주장과 이와 연결된 다양한 형태의 증거를 검토하고 이를 법적 유효 쟁점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오직 변호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대체 불가한 영역이다. 변호사 없는 법률 AI는 마치 의사가 없는 의료 기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AI는 이러한 과정에서 변호사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보조할 수 있지만, 변호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리걸테크 산업은 법률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혁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변호사 단체와 리걸테크 기업 간의 갈등이다. 이는 법률 AI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영역에 대한 규정의 모호성에서 오는 갈등이다.

변호사들은 리걸테크 기술이 자신의 고유 업무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반면, 리걸테크 회사들은 변호사 단체의 반발이 기술 개발과 시장 성장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리걸테크의 진흥을 위해서 정부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꼽으라면 바로 이같은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변호사의 전문성을 보호하고,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업무의 영역을 명확히 규정하는 동시에, 리걸테크 기업이 수행할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의료 기술의 발전이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다시 의사에 대한 수요를 높여가는 선순환 구조를 법률 서비스 영역에서도 만들어 내야 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소화제나 진통제를 사 먹는 것이나 집에서 혈압이나 혈당을 장비를 구입해 확인하는 것에 아무런 법적 제약이 없듯, 사람들이 AI 같은 리걸테크의 도움을 받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법률 관련 서비스의 영역이 정의됐으면 한다. 물론 무면허 의료행위가 중 죄인 것처럼 제한된 규정을 넘어서는 무면허 법률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

농구 경기에 24초 룰과 3점슛 제도가 도입된 이후, 경기는 훨씬 더 박진감 넘치게 변했고 선수들의 기량은 크게 향상됐다. 넛지의 순기능이다. 정부는 리걸테크 회사의 기술 개발 의지도 높이면서 변호사들의 역무도 보호하고 국민의 편의와 산업의 진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고려할 것이 많고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올바름 이상으로 행정과 정치에 필요한 것은 일하는 기술이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일이다.

이재원 넥서스AI 대표 jwlee@nexusa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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