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섭의 M&A인사이트] 〈9〉기업의 윤리는 CEO의 윤리를 넘을 수 없다

Photo Image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경쾌한 OST와 함께 1990년 개봉한 영화 프리티우먼(Pretty Women)을 기억할 것이다. 극중 비비안(줄리아 로버츠 분)은 길거리 여인으로, 에드워드(리처드 기어 분)는 무자비한 기업사냥꾼으로 나온다. 줄거리는 신데렐라 신파극이다. 가난한 매춘부 비비안과 백만장자 사업가 에드워드는 신분을 떠난 사랑에 빠진다.

기존 대주주와의 협상을 통해 경영권을 넘겨받는 것이 우호적 인수합병(M&A)이라 하면, 경영권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적대적 M&A라 한다. 적대적 M&A는 다양한 사유로 발생한다. 우선 회사와 주주간 갈등이다. 2015년 삼성물산의 합병과정 중 발생한 삼성과 엘리엇메니지먼트와의 다툼은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침탈로까지 비화되며 국민연금공단까지 가세했다. 당시 공단은 삼성물산 지분 11%를 보유하고 있었고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분승계 갈등은 가족간 다툼이다. 최근의 한미약품, 좀 더 오래 전에는 대한항공, 한국타이어 등의 사례가 있었다.

적대적 M&A는 자본시장의 꽃(?)이다. 공격자와 방어자가 첨단 금융기법과 법률지식을 총 동원해 칼과 방패의 전략을 구사한다. 앞서 에드워드는 공격자다. 재정이 어려운 기업의 경영권을 헐값에 사들여 기업을 해체하고, 계속적인 자산매각을 통해 차액을 챙긴다. 기업의 고유가치, 비전은 안중에도 없다. 방어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포이즌 필(Poison Pil),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백기사(White Knight) 그리고 크라운 주얼(Crown Jewel) 등이다. 경영권분쟁을 한 번쯤 겪어본 분들이라면 익숙하실 것이다. 포이즌 필과 백기사는 외부자원을 이용한다. 낮은 가격의 신주를 발행해 공격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거나, 우호적인 투자자를 끌어들여 지분율을 끌어올린다. 황금낙하산과 크라운 주얼은 곳간 비우기다. 현 경영진에게 막대한 퇴직금을 지급하여 현금을 바닥내거나, 핵심사업을 매각해 인수매력을 감소시킨다.

기업사냥꾼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적대적 M&A는 환영 받지 못한다. 이들의 목적이 무자비한 탐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사회공공의 가치를 창출하는 중심이다. 혁신과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일자리 제공을 통해 생계를 지원한다. 기업사냥꾼들의 명분인 주주가치제고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주가를 띄어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두거나, 비싼 값에 되사라고(Greenmail) 회사를 협박한다.

필자는 35년여 기업을 경영하며 기업의 숱한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특히 경영권분쟁으로 기업을 탈취 당한 몇몇 기업의 경우를 보면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였다. 즉 횡령, 배임 등 오너 리스크가 약점이 되어 결국 기업을 뺏기는 것이다. 단언컨데 대한민국에서 적대적 M&A가 성공한 예는 없다.

국가나 조직의 붕괴는 외부요인보다는 내부요인에 의한 경우가 더 많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인의 윤리가 무너지면 기업도 무너진다. 기업의 윤리는 CEO의 윤리수준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