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시각예술 전문 '모두미술공간' 개관 기념 '감각한 차이'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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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별관 5층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공들여 준비한 ‘모두미술공간’이 새롭게 출발한다. ‘모두미술공간’은 국내 최초로 마련되는 시각예술 분야 장애 예술 전문 공간이다. 장애 예술과 장애 예술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신진 장애 예술가 발굴을 목표로 조성된 전시 공간으로 해외에서도 그 사례를 자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이번 개관전은 12월 12일부터 내년 2월 7일까지 개최되며 《감각한 차이》를 기획한 엄정순 예술감독은 ‘보는 것’에 대한 근원적 물음의 답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를 통한 서사적 작업으로 풀어내 온 미술작가이다. 동시에 27년 동안 아트랩 ‘우리들의 눈’ 디렉터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시각예술을 가르쳐 온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애’에 대한 관점부터 남다르다.

그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장애’와 ‘장애 예술’을 ‘감각’과 ‘감수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대입하여 제안하였다. 장애라는 단어를 감각의 결핍이 아닌, 감수성이라는 예민함을 통해 발현되는 창의성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의 당연한 감각의 사용을 불가피하게 대체된 감각으로 재배치하는 장애인들의 능력은 부족함이 아닌 예민함으로 시각화되며 다양한 표현으로 드러난다. 비 일반적인 신체언어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수집되는 경험의 조각들을 비일상적 채널로 배출해 내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일상이자 우리에겐 특별함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개관전에서는 장애와 비장애, 신진과 경력 등을 구분 짓지 않고 각자가 경험한 감각의 차이를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 5팀(6인)으로 구성, 이들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전시는 두 개의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제1전시실은 하나의 감각이 변환되며 다른 관점으로 표현되는 ‘감각의 차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전시는 엄정순 감독이 직접 디렉팅한 <감각의 벽> 작품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물리적 경험을 선사할 270권의 점자책이 바람에 흔들리는 상태로 구현될 이 작품은 다감각으로 접근하는 미디어 인터렉티브 작품이다. 입력을 기다리는 화면에는 질문이 표시되며 관객의 답변은 점자로 변환되어 점자책 위에 투사된다. 물리적 언어 위에 디지털 언어라는 레이어가 중첩되는 것이다. 이 점자는 0과 1로 구현되는 디지털 시스템의 원리에 맞춰 AI의 도움과 사운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조화로운 5도 화음으로 매칭된다. 64가지 경우의 수가 관객의 언어에 따라 새롭게 조합되며 모두가 다르게 선택한 나만의 차이를 촉각과 시각, 그리고 청각까지 연계된 반응형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작곡가이자 사운드 아티스트인 원우리의 영상작품 <96 BPM>은 그가 보청기 사용자인 무용수 고아라와 함께 2년간의 협업을 통해 창작한 작곡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작곡의 과정과 결과를 극도로 추상화하면 그 본질은 긴장과 이완이며 이는 결국 들숨과 날숨이라는 관계를 통해 호흡으로 지속된다고 말한다. 무용가의 몸짓을 통해 긴장과 이완이 담긴 음악적 대화를 7분 남짓의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김령문, 백승현 부부 작가의 코너 <언덕 위의 파도>는 서로 다른 주제로 작업해 온 두 작가가 낯선 세계와 마주할 때 깨어지는 감각의 경험과 그로 인해 확장되는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설치와 영상 작품으로 담아낸다. 관객 참여형 작품인 김령문의 작업은 언덕 위에서 석고로 제작된 ‘곱고 소중한’ 구를 굴러 떨어뜨려 깨뜨리는 대형 설치작품이다. 백승현의 앞으로 던지기 작업은 독일 유학 중 빵집에서 겪은 밀가루 반죽의 노동 과정을 흙덩어리로 치환, 작가로서의 정체된 상황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통해 실존적 감각으로 풀어낸다.

제2전시실은 새로운 장애 예술 작가들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다양성 및 장애 예술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작가와 해외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장애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한 배경과 과정을 톺아보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좁은 시야를 가진 박찬별 작가는 아트랩 ‘우리들의 눈’을 통해 어릴 때부터 미술 전문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비장애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좁은 시야를 자신만의 특화된 감각으로 활용한 100여 점의 ‘0호 캔버스’ 작품 <나, 그리고 백 개의 망원경>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선보인다.

서귀포의 미술 커뮤니티 ‘사단법인 누구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강승탁은 호랑이, 늑대 같은 맹수를 화려한 색감으로 즐겨 그리는 발달장애 작가이다. <무지개 호랑이>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작가는, 어느덧 이를 통해 껍질을 벗고 작업에 몰두한다. “그림을 그리는 즉시 행복해진다”라고 말하는 그는 멘토링과 개인전 등 커뮤니티의 지원을 통해 예술적 역량을 키워가며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회화 작품과 더불어 아카이브 영상을 소개, 그의 내면세계를 심도 있게 관찰해본다.

동경 시내 교통의 요지인 시부야에서 장애 커뮤니티 <시부야 폰트>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디렉터 라일라 카심은 지역 미술 워크숍을 통해 시작된 장애인들과의 연대를 기관과 일반인까지 연결한 성공사례를 보여준다. 자신도 휠체어 이용자인 그는, 커뮤니티가 겪는 고립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디자인 스쿨과의 연계 프로세스를 통해 오픈소스를 개발, 판매까지 이어왔고 각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였다. 장애인들의 스케치를 폰트와 패턴으로 생산해 내고 있으며 유니클로, 구글폰트 등 세계적 브랜드와 협업하였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AI를 활용한 테크 환경으로 관객들이 전시를 경험하며 불편하지 않도록 모두를 위해 높은 관람 접근성을 제공하도록 배려하였다. 전시장에서의 기본적인 작품해설은 물론, 전시 환경과 관람 방법까지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폭넓게 제공받을 수 있어, 무장애(Barrier-free)를 넘어 포괄적(inclusive) 전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를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해 접근성 매니저를 통해 전시장을 관리하며 쉬운 말 해설, 시각장애인 사전 관람 등의 환경을 조성, 장애 예술 분야에서의 예술적 의미와 기술적 환경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이금준 기자 (auru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