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은 세계 경제 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예고한 관세인상은 무역 파트너간 보복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고 보호무역주의와 미국우선주의 정책은 무역, 투자, 공급망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한국 경제에 다소 위협을 가할 수도 있지만 효과적인 대응은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다. 트럼프의 첫 임기동안의 정책과 현재 공약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전략을 모색해야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주장은 상대방에게 '공정한 몫'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그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공정성'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일반적인 공정성의 개념에 기반해서 지혜로운 협상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로 무역과 관련해서 차기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문제삼을 수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양국의 산업구조와 경쟁력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은 서비스 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품무역에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강달러 현상으로 인한 원화 약세 역시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는 상당부분 미국 측에 그 원인이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한미간 비교우위 분야에 특화해서 양자간 무역기회를 더욱더 확대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둘째, 투자문제는 훨씬 더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미국내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의 제조 생태계 육성과 고용 창출을 위해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자는 이러한 보조금을 철회하겠다고 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하여 미래의 투자를 저해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을 조성한다. 미국 제조업의 가장 큰 외국 투자자 중 하나인 한국 기업은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상당한 손실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실패는 미국에게도 큰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모두 보조금 계약이 존중되도록 협력해야 하며 이전 협상에서 미국이 한 법적, 윤리적 약속을 이행토록 요구해야 한다. 보조금과 무관하게 우리 기업들은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는 기술혁신, 자동화 등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셋째,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와 회복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고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즉 관세를 높이면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 외국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관세회피 직접투자(Tariff Jumping FDI)를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우선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 현상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우리가 가진 첨단 기술을 활용해 미국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더 적극적으로 통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지속적으로 첨단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과 협상에서 강력한 입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을 넘어 다양한 지역으로 투자를 다각화해 의존도를 줄이고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관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주요 산업별 맞춤형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 굽힐 때 굽히더라도 당당하게 할 얘기는 하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재선은 한국 경제에 위기이자 기회다. 그러나 단기적인 대응에만 치중한다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은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질서 속에서 선제적으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의 중심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hgjeong@kie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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