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를 가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를 내세운 광고판을 종종 볼 수 있다. 거리에서도 스마트폰을 종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실제로 통신 인프라 환경이 좋지 않은 아프리카 등 일부 국가에선 페이스북이 사실상 '인터넷'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만난 기업인은 기자에게 이러한 일상의 이면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한 고위 공무원이 하소연하듯 털어놨던 이야기를 공유했다.
“우리는 페이스북(메타)보다도 우리 국민의 마음을 몰라요.”
사람들은 일상의 서비스를 즐길 뿐이고, 거기엔 국경은 없다. 하지만 자국 산업을 진흥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 미래를 고려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 공무원의 입장은 달랐다. 구글이나 메타 등이 전 세계 검색 시장과 인터넷 서비스 대부분을 장악하다시피 하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민에 대한 데이터 접근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애둘러 표현한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네이버가 검색을 지배한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됐다.
네이버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수년 째 60%대에 머물렀다가 그 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검색엔진 점유율은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이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글로벌 빅테크가 파고드는 일상의 영역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AI가 새로운 물결의 첨병이 됐다. 메타는 인스타그램에 AI 챗봇을 추가하고, MS는 윈도에 AI 비서를 탑재했다. 오픈AI는 무료로 챗GPT를 제공한다.
AI에 있어 데이터는 자라나는 나무의 물과 햇빛이나 다름 없다. 데이터의 품질과 양이 AI 성능을 좌우한다. 특히 검색 엔진과 웹, SNS, IT 서비스 등은 데이터 확보를 위한 AI의 중요한 자원인데, 이러한 시장에 글로벌 빅테크가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다.
해당 분야를 빅테크가 점령하면 AI 주도권 확보가 어려워질 뿐더러 보안 이슈도 커질 수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최근 자신이 인수한 SNS 'X(옛 트위터)'에서 사용자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약관개정을 추진해 논란을 빚는 게 대표 사례다.
AI의 발전가능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AI는 그 활용에 따라 긍정적 영향이 더 클 수도, 부정적 영향이 클 수도 있다. 현재로선 국가의 미래를 바꿔놓는 기술이 될 가능성도 높다.
소버린(주권) AI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AI 서비스로 해외 시장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동안, 우리는 얼마만큼 해외로 발자국을 뗐는 지 불분명하다.
우리나라 법과 제도는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자국 산업 진흥과 규제를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학계와 산업계, 정부가 수년째 한 목소리로 'AI 기본법 제정'을 강조하지만 법 통과는 기약이 없다. 나중에 국내 시장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장악됐을 때는 누구를 국정감사에 불러 책임을 물을 것인가.
김명희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