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35〉제6차 5개년계획 과학기술부문 수정…1993년까지 64M D램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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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 과학기술처 장관이 1988년 3월 4일 국립과학관을 방문, 관계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6공화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1988년 1월 25일.

정인용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이날 오전 민주정의당 당사에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면 주요정책과제 보고'를 통해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1987~1991년, 이하 6차 5개년계획)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계획 수립 당시와 달리 변한 현재 시대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대통령 선거 공약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6차 5개년계획을 전면 수정하겠습니다.”

노 대통령 당선자는 보고를 받고 “대선 공약을 반드시 지킨다는 자세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수정계획 작업은 경제기획원이 총괄했다. 부문별 작업은 해당 부처가 담당했다. 이 작업은 6공화국 5년 국가운영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이런 방침에 따라 4월 초부터 6차 5개년계획 과학기술부문 수정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 작업에는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서정만 전 국립중앙과학관장(당시 과학기술처 정책기획관)의 회고. “과학기술처는 제6차 5개년계획 과학기술부문 수정작업을 위해 각계 전문가 참여와 협조를 얻어 4월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에는 산업계·학계·연구계와 관련 기관 등에서 모두 100명 이상의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했어요. 5개월여 동안 바쁘게 수정작업을 했는데 이 계획 작성 당시와 비교해 변화한 국내외 경제·사회 여건과 과학기술 선진국 도약을 위해 과학기술계 의견을 대폭 수렴, 수정계획을 작성했습니다.”

과학기술처 6차 계획 기본 목표를 '2000년대 과학기술 선진국 구현을 위한 기반 구축과 중간거점 확보'로 정했다.

과학기술처는 수정계획 역점을 △과학기술정책 방향 △과학기술 관련 사업 발굴과 정책 반영 △중요 사업에 대한 추진계획 구체화 등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정부는 5월 17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제6차 5개년계획 수정안을 심의하는 민관합동회의를 개최했다.

나웅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과학기술처 등 10개 부처 장관과 김상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구자경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 경제단체장, 학계 대표, 연구기관 대표 등이 참석해 정부 관계자로부터 '재정 운용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 계획 수정에 대한 내용을 폭넓게 논의했다.

이관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부의 과학기술 목표는 2000년대 과학기술 선진국 10위권 안에 드는 것”이라면서 “그러자면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국책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예산을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특별회계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경 전경련 회장은 “고급 기술인력을 늘리는 일이 경제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 “기술인력 양성에 대한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7월 29일 이현재 국무총리 주재로 경제사회발전계획 심의회를 열고 지난 4월부터 추진한 6차 5개년계획 수정계획안을 확정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조세감면 혜택은 기술개발, 인력개발, 지방공업육성 등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의 감면은 축소하거나 폐지키로 했다.

또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컴퓨터 보급을 1991년 학급당 31대로 확대하는 등 과학기술교육 환경을 개선키로 했다. 생활보호 대상자 자녀의 실업계 고교 진학 시 1989년부터 학비를 정부가 전액 지원키로 했다.

정부는 기술집약과 고부가가치 상품에 대한 수출 비중을 크게 높이는 한편 개발도상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해외 투자도 적극 장려키로 했다.

7월 30일 경제기획원은 제6차 5개년계획 수정계획 기본골격을 발표했다.

경제기획원은 주요 정책 과제로 △경제운용의 형평성 제고와 공정성 확보 △경제 균형 개발과 서민층 생활 향상 △경제 개방화와 국제화 추진 등을 제시했다.

9월 7일 과학기술처는 5개월여 작업 끝에 제6차 5개년 과학기술부문 수정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과학기술처가 마련한 수정계획은 '2000년대 세계 10위권 과학기술 선진국 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연구개발사업 확대, 과학기술 투자재원 확보, 과학기술 국제화 등 7대 전략을 중점 추진키로 했다.

정보산업 기술의 경우 애초 4M D램 수준의 반도체 개발계획을 대폭 앞당겨 16M D램은 1991년까지, 64M D램은 1993년까지 개발해서 1995년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가기로 했다.(삼성전자는 정부 계획보다 빠른 1992년 9월 25일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는 기술 쾌거를 올렸다.)

또 1988년 2.4% 수준인 국민총생산(GNP) 대비 과학기술 투자비율을 1989년 2.6%, 1990년 2.8%, 1991년 3%(4조5000억원)로 확대하고 15만명의 고급 두뇌를 확보키로 했다.

윤영훈 전 한국과학기술재단 사무총장(당시 과학기술처 기술정책실장)의 말. “과학기술부문 수정계획은 우리 여건과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정하고 실천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우리나라가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첨단과학 기술 등 기반을 중점 구축키로 했습니다.”

과학기술처가 이날 발표한 과학기술부문 7대 추진전략은 아래와 같다.

◇특정연구개발사업 확대=6차 계획기간에 모방 중심 연구개발(R&D)을 창조형으로 전환하기 위해 특정 연구사업을 확대·추진하고, 기초연구를 획기적으로 육성한다. 과학산업 원천기술과 반도체, 컴퓨터, 소프트웨어(SW) 시스템, 엔지니어링, 해양, 항공·우주, 생명공학, 신소재, 공공복지, 에너지 자원 등 13대 분야 57개 과제를 집중 개발한다. 과제 선정과 관리도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한 협의체 중심으로 운영한다. 민·관 공동연구사업은 연구조합 등 중소기업기술 중심, 기초연구는 대학부설연구소 학회 중심으로 운영을 개선한다.

◇연구개발 체제=산·학·연 협동연구를 촉진해 R&D 능력 효율화·극대화를 추진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학은 주로 순수기초과학을 전담하고 일부 목적기초연구를 수행하며, 민간연구소는 상품화 개발에 주력하도록 기능과 체제를 재정립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정부부문 R&D 수행 주체로서 대학과 민간 가교 역할을 담당하며, 미래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한다.

◇공공복지기술 개발=환경과 보건, 기상, 표준, 국토개발 관련 기술 등 공공복지 기술 개발을 적극 촉진해 국민생활 향상과 사회 균형발전을 선도한다. 산업과 과학기술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표준제도 확립 등을 중점 추진한다.

◇원자력 이용 기술 자립=원자력 이용 기술 자립과 안정성 확보를 통해 경제성 있는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국민생활 편익과 안전을 도모한다. 원자력 안전성 확보를 위한 연구 강화와 전문기관 육성, 원자력발전 기술 자립과 R&D 기반 구축, 평화적 원자력 이용 증진과 국제원자력 협력 외교 등을 중점 추진한다.

◇산업기술 개발=민간 주도의 산업기술 개발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민간기업 연구소와 산업기술연구조합의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기술지원센터와 기업기술훈련원 기능 및 시설을 대폭 확충한다. R&D형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신기술개발지원공단'을 설립, 운영한다. 또 과학기술정보 종합지원체제를 확립하고 주요 산업 발전과 해외 진출 촉진을 위한 엔지니어링산업의 획기적 지원 시책도 추진한다.

◇과학기술 투자 재원 확보=과학기술 투자 재원을 1991년 GNP 대비 3%(4조5000억원)를 확보하고 정부 예산 가운데 과학술 예산 비중을 늘리기 위해 과학기술특별회계제도를 설치한다. R&D 인원도 1986년 4만7000명에서 1991년까지 8만1000명으로 확대한다. 이를 위해 이공계대학 교육의 질적 고도화를 추진하고 과학기술영재 교육, 고급 해외 과학기술 인력 유치, 연구인력 해외 파견 확대 등을 추진한다.

◇과학기술 국제화=과학기술 국제화를 위해 선진국, 개도국, 중국 등과 해외과학기술 협력을 강화한다. 장기 국토개발계획과 연계해 과학기술연구단지 조성 계획을 수립·추진한다. 미래 주역인 청소년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 주는 청소년 과학화 사업과 과학기술문화 창달 사업 등도 중점 추진한다.

과학기술부문 수정 계획은 과학기술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6공화국의 원대한 과학기술 설계도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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