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국에서는 두 개의 중요한 에듀테크 콘퍼런스와 박람회가 열렸다. '러닝 임팩트(Learning Impact) 2024'는 에듀테크 표준화를 주제로, 'ISTE 라이브(Live) 24'는 에듀테크 촉진을 주제로 다뤘다. 초중등 교육부터 고등교육, 직업훈련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뤘으며, 인공지능(AI) 도입 이후 미국 대학과 기업의 신속한 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국내 교육 분야와 기업의 인재 양성과 관련된 주요 이슈를 선별해 시사점을 찾아봤다.
먼저, 디지털 혁신과 AI의 급속한 발전이 서비스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AI 도입은 서비스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질병 진단, 치료 계획 수립, 환자 모니터링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며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AI는 개인 맞춤형 학습, 교육 콘텐츠 생성, 학습 진도 관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혁신을 이루고 있다.
서비스 산업 구조의 변화를 뒷받침할 만한 흥미로운 벤치마킹 자료로 챗GPT의 성능을 들 수 있다. 챗GPT4는 이전 버전인 챗GPT 3.5에 비해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자료에 따르면 학업 성취도 측정과 전문 자격증 시험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성과를 보였으며, 특히 대학원 입학을 위한 어휘력과 독해력을 평가하는 Verbal GRE 시험에서는 상위 1% 수준의 실력에 도달했다. 이러한 성과는 고도화된 언어 모델이 인간 학습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지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복잡한 질문에도 정확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챗GPT의 발전 속도이다. 미국 변호사 자격 시험인 Uniform Bar Exam에서 법률 지식과 분석 능력이 몇 개월 만에 하위 10%에서 상위 10%로 향상된 점이 눈에 띈다. 반면, 고등학생이 대학 수준의 문제를 풀게 하는 AP(Advanced Placement) 시험의 영어 작문과 문학 분석에서는 성과가 저조했으며, 프로그래밍 시험(Codeforces)에서는 다른 시험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AI가 특정 분야에서는 여전히 개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며, 고차원적 사고력, 맥락 분석, 복잡한 문제 해결 등은 여전히 인간 고유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챗GPT4의 후속 모델인 챗GPT 4o(omni)가 현재 최고 수준의 성능을 보이는 멀티 모달 AI라 하더라도, 인간 고유의 영역은 AI에게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우선, 교육 분야와 기업의 인재 양성 분야는 현재 교육과정을 점검해보고, AI 기반 사회를 대비하는 학생과 성인에게 필요한 역량과 스킬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초중등 및 고등 교육은 계산적 예측과 공식화된 의사결정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챗GPT의 성능에서 보듯이 AI가 잘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AI는 인간의 판단 능력을 쉽게 복제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 판단은 경험적 지식, 윤리, 가치, 관계, 문화 등을 바탕으로 유연하고 상황에 맞춰 심사숙고한 사고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방향성은 AI가 잘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 고유의 판단력과 지혜를 배양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육과 업무 환경이 급변하는 요즘, 필요한 스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프레임워크가 주목받고 있다. '듀러블 스킬스(Durable Skills)'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21세기 학습자 스킬, 소프트스킬 등 다양한 명칭으로 다루어지던 역량과 스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10가지 분야로 구분되며, 사람 고유의 영역이면서 AI가 쉽게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어려운 분야로 구성됐다.
최근 미국 유명 대학은 AI 기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최초의 AI 조교인 '질 왓슨'을 시범 운영한 것으로 유명한 조지아텍은 수업 설계, 강의 조교, 수업 지원 도구 형태로 AI를 확대해서 적용하고 있다. 경영대학의 '시스템 분석과 설계' 과목에서는 생성 AI를 활용해 온라인 코스웨어를 설계하면서 교수설계자의 생산성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수업자료와 모범 사례들도 만들어냈다. 교양 과목인 '공공 정책'에서는 AI 조교가 학생들의 질문에 지체 없이 답변을 제공하고, 학생 간의 불평등 문제를 발견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컴퓨팅·정량분석' 과목에서는 AI를 수업 지원 도구로 사용해 학생들이 AI 활용법을 배우고 동시에 AI 한계를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AI가 문제 생성과 간단한 풀이에는 유용했지만, 오답과 잘못된 문제 인식 등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고 한다.
AI의 한계에도, 조지아텍의 AI 활용 전략과 도전적인 태도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 덕분에 조지아텍은 'AI-ALOE(National AI Institute for Adult Learning and Online Education)'라는 다양한 AI 기술 개발 프로젝트들을 주도하고 있다. AI-ALOE는 조지아텍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 프로젝트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액센츄어(Accenture)의 지원을 받아 성인 학습과 온라인 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AI 기반 모델을 개발하는 협동 연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는 지능형 튜터 제작 및 배포 플랫폼, 동기 부여 지표 시스템 설계, 온라인 학습용 지능형 교과서 및 교재, Q&A 에이전트, AI 중재 사회적 상호작용, 온라인 실험실에서의 자율 학습 등 도전적 주제가 포함됐으며, 여러 대학 및 기업들과 협력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초중등 분야에서는 미국 워싱턴주의 사례가 주목할 만하다. 워싱턴주 교육감실은 초중등 교육분야의 공립학교를 위한 '인간 중심(Human-Centered) AI 가이드'를 발행해 AI 기술의 교육적 활용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가이드는 AI의 윤리적 사용, 데이터 프라이버시, 학문적 무결성 등을 강조하며, 교사와 학생이 AI 도구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개발됐다. 5가지 모듈로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은 AI 기초부터 실제 활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교장·교감 등 학교의 리더를 위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다. 교육과정 기획과 콘텐츠 구성에는 현직 교사들이 참여해 개발한 것도 특징이다.
워싱턴주는 'Human-AI-Human(H→AI→H)' 접근법을 채택해 인간 탐구로 시작해 AI 결과물을 반영하고, 최종적으로 인간의 이해와 반영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이와 같은 사람 중심의 AI 활용 방식을 통해 개인 맞춤형 학습을 촉진하고, 교사 업무 효율성을 높이며, 학생이 빠르게 변화하는 AI 기반 사회에 잘 대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초중등 및 고등 교육 분야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한 대담한 도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AI를 안전하고 교육적,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이용하려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스킬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문제를 식별하고 해결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에듀테크 산업계는 매년 놀라울 정도로 혁신을 이루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은 에듀테크 분야에서도 치열한 AI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 중 MS의 '러닝 액셀러레이터(Learning Accelerator)' 제품군은 조만간 국내 에듀테크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수학 교육에 활용되는 '매쓰 코치·프로그래스(Math Coach·Progress)' 서비스는 국내 에듀테크 산업계에 가장 위협적 경쟁자 또는 조력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서비스는 이미지, 음성, 광학문자인식(OCR) 기능 등을 통해 학생과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서술형 문제 생성과 풀이를 도울 수 있고, 유사 문제를 생성해 수준에 맞는 코칭도 제공할 수 있다. 교사는 문항 제작, 검토, 분석 과정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학습 진도와 수준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 기능도 제공된다. 수학 교육을 위해 사용된 'Phi 3.14'라는 경량 모델(SLM)은 연산의 정확성과 비용 효율성을 고려해 수학 교육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활용한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자주 활용되는 10여가지 AI 도구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제품의 핵심 경쟁력은 사용자 경험과 정확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챗GPT나 제미나이와 같은 생성 AI는 범용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교육과정에 적합한 수업 설계나 학습 자료 제작, 학생 학습 활동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스킬이 잘 갖춰진 교사나 학생이 아니면 목적에 맞는 AI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틈을 잘 파고들어 개발된 에듀테크 제품이 미국 교사의 선택을 받고 있다. 교육과정과 학생 읽기 능력에 따라 지문을 생성해주는 도구가 있는가 하면, 수업 설계, 평가 기준 설계, 문제 출제와 같은 전형적 AI 기능은 기본이고, 학생이 쉽게 답을 찾지 못하도록 상황을 유도하면서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는 AI 도구들도 있다. 교사나 학생 요청에 단순히 응답하는 도구들이 있는가 하면, 교사가 직접 AI 도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GPT 빌더를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최근 급성장 중이다. 매직스쿨(MagicSchool)이나 스쿨에이아이(Schoolai)와 같은 교육 전용 GPT 플랫폼은 교사 사용이 급증하고 있으며, 투자 유치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AI 기술 개발과 활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히지만, 매년 미국에서 개최되는 에듀테크 콘퍼런스와 박람회에서 확인하는 현실은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는 위기감이다. 에듀테크 산업계와 교육 현장 거리가 미국에 비해 상당히 멀게 느껴지며, 주된 원인은 아마도 기회 부족일 것이다. 에듀테크 제품과 서비스를 학교에서 활용하는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기회와 학문적 무결성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 역시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에듀테크 기업을 위한 투자와 재정적 지원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학과 교육기관이 AI를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 통합하는 전략과 방법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지아텍과 애리조나주립대는 AI를 학교 차원에서 적극 도입하고 있는 모범 사례로 꼽히므로, 이들 대학의 AI 도입 전략과 프레임워크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AI를 활용한 학습 플랫폼의 개발과 실제 적용 과정에서 이들 대학이 보여주는 성과와 이슈는 국내 대학에 귀중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안전하고 학문적 무결성을 보장할 수 있는 AI 기반 에듀테크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보다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에듀테크 산업과 교육 현장 간의 거리를 좁히고,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학생이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스킬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한국 교유기관과 에듀테크 기업도 미국의 성공적 사례처럼 글로벌 에듀테크 리더로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 분야의 성공적 경험과 사례는 더 많은 나라와 지역, 더 다양한 도메인으로 퍼져 나가서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조용상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zzosang@gmail.com
〈필자〉 조용상 박사는 공공, 민간, 학계를 두루 거친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 혁신 분야의 전문가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위원, 아이스크림에듀 부사장 겸 대표,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에서 디지털비즈니스학과장 겸 인공지능융합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스타트업(데이터드리븐, 위키드스톰, 오르드)을 위한 수석 아키텍트로 일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표준화 전문가로 활동 중이며, 에듀테크 분야와 전자문서 분야에서 여러 워킹그룹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응용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분야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