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8월부터 1년가량 대통령 추천 몫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두 명으로 구성된 채 파행 운영 중인 가운데, 공영방송 주도권 확보를 제외한 방송·통신·플랫폼 관련 현안을 해결할 적기를 놓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동관·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이진숙 방통위원장 체제 역시 정보통신기술(ICT) 현안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공영방송 손질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안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위원장 취임 당일인 31일 방통위는 기습 전체회의 열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KBS 새 이사진 선임을 의결했다. 이 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이 임명된 지 약 10시간 만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6당은 1일 이 위원장 탄핵안을 본회의 보고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르면 2일 표결이 이뤄져 국회를 통과하면 이 위원장의 직무는 그 즉시 정지된다. 당분간 방통위 정상화가 어려워지는 등 여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와 이용자 보호 분야의 정책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방통위는 장기간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탓에 좀처럼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대 사안을 들고 방통위원장 면담을 신청하는 업계를 돌려 세우는 데 바빴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들어 플랫폼·인터넷 업계 등과 방통위원장 면담은 한 차례도 없었다.
방송·통신·플랫폼 등에 대한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방통위 본업에 불충실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지난해 미디어 정책을 종합적으로 관리·규제하는 통합미디어법을 제정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유료방송 업계 숙원인 콘텐츠사용료 대가산정 제도 개선도 숙제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통신사 판매장려금 담합 문제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위반 관련 과징금 부과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요금 인상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하다.
방통위 업무 차질이 장기화되면 결국 정책의 수혜 대상인 국민의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1년 새 방송·통신 이용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며, 결국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이 방송·통신 정책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사청문회 당시 이 위원장은 공영방송 이슈에는 목소리를 높인 반면,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등 정책적 사안에 대해선 추상적인 답변을 반복,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이 위원장 청문보고서 채택 논의 당시 “선입견을 배제하고 정책 능력과 도덕성을 판단해 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면서 “전문성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