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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주로 한정된 자원을 특정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목표를 이루어내는 방식에 적용되는 격언이다. 우리나라의 전력시스템도 과거 급속도로 성장하는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발전을 통한 송전 방식의 중앙집중형으로 운영돼왔다.

이에 따라 발전설비가 주로 해안가에 건설됐고 생산한 전기를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대규모 소비처로 공급하고 있다. 충남, 강원, 부산·울산 등 해안가 지역에 소재하는 발전시설에서 우리나라 전체 전력량의 약 60%를 생산한다. 반면, 전력수요는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기준 동 수도권의 전력 소비량은 우리나라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특히 서울은 전력량의 생산 대비 소비 비율인 '전력자립률' 이 10%에 그친다.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공급받기 위한 송전선로가 필수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발전을 통한 송전 방식의 전력시스템에 대한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 이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력망 보강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며, 송전선로 건설에 적지 않은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또, 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는 것도 큰 과제다. 이에 따라 송전선로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은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제는 분산에너지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

분산에너지란 에너지의 사용지역 인근에서 생산되고 직접 소비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지역 단위에서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받기 위한 송전선로 건설이 불필요한 장점이 있다. 소비자가 직접 설치하거나 배전망에 연계되는 소규모 태양광, 연료전지 등의 발전설비가 분산형 전원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기존 석탄화력발전 중심의 발전원보다 깨끗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분산에너지를 활용하는 전력시스템을 통해 현행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지난 14일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은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자급형 에너지 시스템을 지향한다. 지역 내 생산·소비 활성화를 통해 장거리 송전선로 추가 건설을 최소화하는 것이 분산에너지법의 핵심 취지인 것이다. 이를 위해 전력수요 및 발전설비의 특정지역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시행된다.

우선,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수요를 보다 전력 공급이 용이한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와 더불어, 건물단위에서 전력 자립을 유도하기 위한 △분산에너지 설치의무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지역 단위에서 에너지 생산·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력 직접거래 특례가 적용되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도 도입된다.

이를 통해 지역별 발전·수요 특성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지역 에너지 기업과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 또, 태양광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소규모 분산자원들을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하나의 발전소와 같이 운영하는 △통합발전소사업도 생겨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기업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결국 가격 요소인 만큼,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는 △지역별 전기요금제 근거도 마련됐다.

정부는 법 시행에 따라 도입되는 제도를 차질없이 이행하는 한편, 분산에너지 친화적인 시장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소규모 분산자원을 모집한 통합발전소가 전력 시장에 참여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실시간 시장·예비력 시장·보조 서비스 시장을 제주도에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향후 육지 확대를 추진한다. 또, 지역별 전기요금 적용을 위한 제도개선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지역별로 다른 전력 도매가격을 적용하는 '지역별 한계 가격제' 를 우선 도입해 발전원의 효율적 분산을 유도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별 전기요금을 책정할 원가 근거를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중장기 분산에너지 정책 방향이 담긴 분산에너지 활성화 기본계획 수립도 추진한다.

무탄소 에너지 전환의 거대한 패러다임 속에서 증가하는 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수용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송전선로 등 전력 인프라 추가 건설은 필수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좁고 한정된 국토에 송전선로를 무한정 건설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속가능한 전력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분산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여 장거리 송전망에 대한 의존도 자체를 낮추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전력망 보강 부담 자체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뭉치기' 보다는 '흩어지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