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세계 각국의 AI 패권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AI를 선도하는 세계 주요국의 각축전에서 승리하는 곳이 패권 경쟁의 과실을 가져갈 수 있다. AI는 세계의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와 권력 판도를 좌우할 게임체인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위기이자 기회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디지털 분야에서 나름 선진국이라 자부해왔던 대한민국이었지만 지금 시기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한 순간에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알파고와 챗GPT의 등장으로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이후 AI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AI가 인간 능력을 초월하고 일자리를 뺏는다는 부정적 생각에만 집중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 같은 미국 기업은 이미 GPT-4o, 제미나이(Gemini) 등 놀라운 성능의 AI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이 운용하는 클라우드와 운용체계(OS)로 글로벌 캔버스에 밑그림을 채워나가는 상황이다.
AI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문화, 역사, 관습과 규범 등 제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과 추론으로 이른바 '정답'을 만들어 간다. 이 때문에 입력한 데이터가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 정해진 답은 달라진다. 현재 초거대 생성 AI를 주도하는 미국 기업의 AI는 필연적으로 북미 문화권에 편향된 AI를 만들 것이다. 이를 세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북미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정답이 지구촌 사회의 정답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국가적 자존감을 이야기하기 앞서서 다른 곳에서 만든 정답이 나의 삶의 기준으로 사실상 강제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으려면 자국 AI 시장과 자국 AI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와 제도에 맞는 결과를 내는 자국 AI를 상용화해 다른 나라 AI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자주국방과도 같은 개념이다. 우리가 독자적인 4.5세대 전투기를 만들고 한국형 전투체계를 만드는 것은 동맹국이라도 타국에 의존하는 것은 큰 리스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 AI 개발과 상용화 역시 같은 의미다. 자주국방과 같이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럽은 미국 빅테크 기업의 기술력과 절대적인 시장 지배에 대항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강한 디지털규제법을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의 독립적인 디지털 시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정책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 기업은 규제하되, 자국 기업은 키우려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 테크 기업과 국내의 소수의 경쟁력있는 기업이 치열하게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역차별 부작용을 심화시킬 규제법 보다는 하루 속히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만 한다.
세계 주요국이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도 신 보호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자국 기업에게 부당한 혜택을 주고 외국 기업을 배척하는 제도는 설계 자체가 어렵다. 유럽처럼 결과적으로 외국 기업만 배척하는 정책도 결국은 우리 기업만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결국 규제는 필요 최소 한도로만 유지하면서 현재 있는 법과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 기업이 기술과 시장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적법한 진흥 정책에 진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AI 수준이 일부 지표에서는 세계 순위권에 있다고 한다. 실제 경쟁력은 AI 선진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쳐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더 걱정은 국민이나 기업의 AI 활용도는 순위가 20위 가까이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AI를 보편화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AI를 활용하는 시장 조성에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한다. 공공기관부터 AI 활용을 넓히면 시장이 형성되면서 AI 기업과 기술력이 발전할 수 있다.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선순환으로 AI 산업이 발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도 빅테크 AI의 괄목할만한 성능에 놀라기만 할 때는 아니다. AI는 현재와 미래 심지어 과거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각성하고, 그 본질과 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미국은 산업 기반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수백조원 이상을 AI에 투자하고 있다. 생성형 AI 투자 레이스에 적극 뛰어들어 관련 산업 분야에 막대한 보조금도 투여하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넥스트 원유 수출 산업을 고민하는 중동의 부유국은 미국 외에 자국도 AI 패권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AI 기업 발굴을 고민하면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지원법 확립, 중동국가와도 긴밀히 협조하는 것도 현재 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각(인식)이 태도를 만들고 결국 상황을 만드는 것을 믿는다면 우선 AI에 대한 우리의 관념 내지 대하는 태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AI를 신기한 것으로 보거나,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에 'AI 꽃'을 피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AI는 결국 크게는 국가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작게는 우리 개개인의 삶에 필수적인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AI를 적극적으로 품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AI에 대한 '기우(杞憂)'로 미리 강력한 규제법을 만든다면 AI가 발전하기보다 아예 주저앉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단일한 것에 가까운 외국 AI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바로 그 단일한 AI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형 AI 들이 서로 경쟁과 협력으로 글로벌 AI와 어깨를 나란히 해야한다. 정부와 기업이 노력하는 것 외에도 사용자이자 AI 주인이 될 국민의 주권인식도 필요하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를 취득한 후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임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를 지냈다.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산업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 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