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한 50대 여성이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수차례 응급실로 실려 간 사례가 보고됐다.
3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 라이브 사이언스 등에 따르면 라헬 제우드 캐나다 토론토대 박사팀은 희귀 질환 '자동 양조장 증후군'(auto-brewery syndrome; ABS)을 앓고 있는 50대 여성의 사례에 대한 보고서를 이날 캐나다 의학협회 저널(CMAJ)에 게재했다.
의료진에 따르면 환자 A씨는 2년 전부터 과도한 졸음과 기면증 증상을 겪었고, 우울한 말투를 사용하거나 내뱉는 숨에 술 냄새가 나는 등 만취자 같은 행동을 보였다. 또한 졸음이 쏟아져 낙상 등으로 7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일곱 번째로 응급실에 방문했을 때 그의 혈중 에탄올 수치는 ℓ(리터)당 62mmol(밀리몰)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정상 수치가 2mmol/L인 점을 감안하면 30배가 넘는 것이다. 만취해도 30~40mmol/L 정도다. 62mmol/L 수치는 술만 마셔서 올라가기 어려운 수치로, 생명이 위험한 수준이다.
한 번은 병원에서 A씨에게 '알코올 중독'을 진단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A씨가 종교적 이유로 수년 전 술을 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 역시 그가 에탄올 수치 외에는 알코올 사용 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마지막 병원에서 응급실 의사가 “자동 양조장 증후군이 의심된다”고 진단하고 나서야 A씨는 전문의에게 보내질 수 있었다.
자동 양조장 증후군은 '장 발효 증후군'(gut fermentation syndrome)이라고도 불린다. 위장관의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일상생활에서 섭취하는 탄수화물을 에탄올로 바꾸는 매우 희귀한 질환이다. 쉽게 말해 특정 종의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위장관을 탄수화물을 발효시키는 알코올 증류기로 바꾸는 것이다.
최초로 발견된 사례는 1946년 아프리카의 한 5세 남아다. 이 아이는 위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열돼 사망했는데, 부검 결과 아이의 뱃속이 알코올 냄새가 나는 '거품' 같은 액체가 가득했다.
ABS는 약 300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음주 단속에 걸려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40대 남성이 ABS 때문에 혈중 알코올농도 0.2%(한국 기준 면허 취소)로 경찰 단속에 걸리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이 질환이 소장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사카로미세스(Saccharomyces), 칸디다(Candida) 두 종의 곰팡이가 과도하게 증식하는 경우 발생한다고 보이는데, 이 곰팡이들은 항생제로 유익한 곰팡이가 죽으면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A씨 역시 40대 중반에 요로 감염으로 항생제를 복용했다.
제우드 박사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지 않는다면 증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A씨에게 극도로 제한된 저탄수화물 식단을 처방했다고 전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