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스타트업이 가전사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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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호 앳홈 대표

스타트업 중에 가전사업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 그럴까? 우선 가전제품은 대기업 및 가전 전문 기업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웬만한 제품으로는 성공하기가 힘들다. 또 하나 주효한 이유는 가전사업은 판매가 끝이 아니라 곧 시작이라는 점이다. 일정 기간 동안 AS를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제품의 특성상 사업 유지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가전제품은 고장이 날 경우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므로 신속하고 확실한 AS가 필수다. 그만큼 엄청난 투자가 뒷받침될 수밖에 없다.

앳홈은 지금 가전사업이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AS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예상보다 훨씬 커서 “왜 내가 가전사업을 시작했을까”하고 내심 후회하기도 했다. 그만큼 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가전 브랜드 하나를 잘 안착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전사업을 지속해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에게 선택의 다양성을 줌으로써 고객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홈라이프를 누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고객의 니즈는 다양한데 시중의 가전제품은 대부분 대기업이 점유하면서 성능이나 디자인 등이 다 비슷비슷하다. 대기업 가전 외에는 마땅히 구매할 만한 제품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차지 않아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음식물처리기를 구매한다고 했을 때 집이 좁고 음식물쓰레기가 별로 없어서 크기와 용량이 작은 제품을 원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시중에는 4인 가족 이상의 음식물처리기가 대부분이다. 앳홈이 지난해 10월 출시한 미니 음식물처리기 '미닉스 더 플렌더'가 선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니즈에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대기업 및 가전 전문 기업과 다른 제품을 선보이려면 그만큼 창의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공장 설비나 생산 라인이 없는 스타트업이 더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는 데 유리할 수 있다고 본다. 제조설비가 없다는 것은 거기에 맞춰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제약이나 한계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은 원가 우위 면에서 불리하고 그때그때마다 금형 등에 몇십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얼마든지 우리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제조사를 찾아 제품을 원하는 대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 마치 애플이 설계와 디자인은 내부에서 하고 제조만 중국 등 생산원가가 낮은 곳에 맡기는 것과 같다.

가전제품은 구입 비용이 크기 때문에 이미 인지도와 신뢰도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 그만큼 가전 스타트업이 성장해나가기 어려운 시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에 더 목말라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가전 스타트업만의 경쟁력을 토대로 더 빠르게, 더 뾰족하게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는 가전제품을 선보여 나간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양정호 앳홈 대표 y_jh@athome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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