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농지에 농업을 지속하면서 상부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여 농업과 발전을 병행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산지 비중이 높은 우리 국토 특성상 상대적으로 지가가 낮고 면적이 확보된 농지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사용하자고 하는데, 식량안보와 농민들의 반대 등 다른 쟁점에 부딪히게 된다.
이 때 농사와 태양광 발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이 대안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정부도 2018년부터 영농형 태양광 시범사업을 도입하고 2019년부터 확산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2024년인 현재까지 영농형 태양광은 법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실증사업,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다. 영농형 태양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이 담보됨으로써 농민들에게 유인이 생겨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제도가 부실하다. 또 농지 지가 상승, 영농활동 불편 등 이해관계가 다른 지주와 임차농 사이의 갈등을 해소해야 하며, 농작물 생산기능을 저해하거나 농지기능을 상실하게 할 우려가 없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어야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며, 2013년부터 농지법이 개정되어 현지에서 '솔라 셰어링(Solar Sharing)'이라 부르는 영농형 태양광을 추진하게 됐다. 일본 역시 국토의 3분의 2가 산악 지대이고 평지가 거의 없으며, 농업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휴경지가 늘어나는 등 여러 문제에 봉착해 있다. 아직 극복할 과제가 있으나 영농형 태양광은 휴경지의 식량 생산을 촉진하고, 농민의 부수입이 증가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농촌의 영농형 태양광이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긴밀히 연결되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확산되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 지바현 소사시에 위치한 기업 시민에너지치바는 약 13만㎡ 농지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뿐 아니라 하부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 그 중 1만㎡는 무경운 농업을 통해 토양에 탄소를 축적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저감한다. 이렇게 생산된 작물을 유기농 된장, 탄소중립 맥주 등 2차 상품으로 가공한다. 1차 작물보다 2차 상품으로 가공했을 때 가격이 10배 이상이라 농민들의 소득이 증가한다. 초기 설비투자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는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설치하며, 이 중 일부 기업들에게는 생산된 전기를 '신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방식으로 20년간 장기 계약을 맺어 판매한다. 특히, 일본 요식업계 대기업 소더비 리틀 리그 컴퍼니는 전기뿐 아니라 유기농 작물로 만든 가공품도 함께 구매한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상품도 조달하게 된다. 소더비 리틀 리그 컴퍼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는 다시 이 지역으로 보내져 퇴비로 사용된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으로서 직원들이 농촌에 와 필요한 교육 등을 하고, 지역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관계는 최소 20년 간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에 더 강력한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ESG 사업활동에도 안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시민에너지치바는 소더비 리틀 리그 컴퍼니 뿐 아니라 파타고니아 등 다른 기업들과도 유사한 협업을 하고 있다. 시민에너지치바가 운용하는 영농형 태양광 부지마다 이를 장기 거래하는 기업들이 지정되어 있다. 또 시민에너지치바는 지역의 대학과 긴밀히 협력하며 패널의 효율성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시키고, 농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의 설계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연구개발(R&D)을 진행한다. 영농형 태양광을 하는 농가와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자 하는 수요처를 연결하는 디지털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발전기금을 통해 지역에 청년들이 유입되어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러한 사업이 다른 지역에 확장될 수 있도록 교육사업과 인턴십도 진행한다.
잘 설계된 영농형 태양광 사업 하나가 지역을 활성화하고, 대기업의 ESG 경영에도 도움을 주는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또한 영농형 태양광을 통한 에너지 잠재량이 얼마이고,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보상금을 얼마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영농형 태양광이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에 기여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개선은 무엇인지로 관점을 전환해보면 어떨까? 이를 통해 그동안 지연된 계획에도 진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 Hyjee@ig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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