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일 혹은 힘든 일을 회피하고 미루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기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추측하건대 검찰의 항소로 또 다시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은 법원이 이 회장에게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자, 항소했다.
이 회장은 1심 판결까지 3년 5개월간 96차례 법원에 출석했다. 2심 법원에 몇 번이나 출석해야 할 지는 미지수다. 2심에 이어 혹시 3심까지, 몇년이 걸릴 지 모른다. 법원 출석 생각에 넌더리 나지 않을까 싶다.
앞서 검찰이 이 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모든 혐의에 대해 '증거 부족' 혹은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
검찰의 항소에 대해 여론은 싸늘하다. 진작에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1심에서 완패로 끝났음에도 검찰이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검찰이 이 회장과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난도 비등하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이 회장의 경영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미래를 위한 인수합병(M&A)과 연구개발(R&D)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는 등 대한민국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당장은 검찰의 항소가 적절했는 지는 2심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다. 검찰이 항소한 만큼 2심 나아가 3심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특수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취지는 거듭된 판단을 통해 실체적 사실에 접근, 공정하고 합리적 판결을 위한 것이다. 검찰의 항소 결정은 절차에 따른 것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회장과 삼성그룹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이 회장을 상대로 검찰이 항소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는 이 회장에도, 삼성에도 도움이 안 된다. 개인이든 회사든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
이 회장이 앞으로 직면할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2심 혹은 3심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재차 확정받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통상 2심 법원은 1심 법원의 유죄여부나 양형을 변경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만큼 검찰보다는 이 회장이 확실하게 유리한 상황이다.
검찰이 기소한 19개 혐의가 1심 법원에 이어 2심 법원, 그리고 3심 법원에서 합법으로 최종 판단되면, 이 회장은 사법 리스크를 완벽하게 떨칠 수 있게 된다
옛말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라고 했다. 늦게 맞는다고 덜 아픈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만 길어진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게, 갈 길이 멀지만 어짜피 가야 할 길이라면 앞만 보고 정진하는 게 현명한 처사다. 이 길을 지나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한시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끝이 없는 길은 없다.
김원배 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