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에 관심 많은 소비자는 11월을 기다린다. 해외 직구로 각종 전자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중국 광군절,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와 사이버 먼데이가 모두 11월에 걸쳤다.
올해는 어떤 제품이 살 만할까 궁금해 중국 직구 플랫폼 '알리 익스프레스'를 둘러봤다. 이내 미니 PC가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컴퓨터인데 최근 국내 유명 테크 유튜버가 소개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마침 게임할 때 사용할 컴퓨터가 필요해 미니 PC를 한 대 주문했다. CPU는 모델마다 정해져 있으며 램과 SSD는 추가 옵션으로 고를 수 있었다. 가격은 CPU에 따라 10만 원대부터 30만 원까지 선택지가 있었다.
고사양 게임인 《호그와트 레거시》를 플레이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성능이 높은 CPU 'AMD 라이젠 9 5900HX' 탑재 모델을 구매했다. 여분 램과 SSD를 가지고 있어 추가 옵션은 선택하지 않았다.
해외 직구한 미니 PC 개봉해 보니
구성품을 확인해 보니 미니 PC 본체와 전원 어댑터, HDMI 케이블, 마운트 브래킷과 나사가 있었다. 본체 크기는 가로 11.4cm, 세로 10.6cm, 높이 3.75cm로 일반 데스크톱보다 훨씬 작다. 무게도 370g으로 가벼운 편이다.
전자제품을 해외 직구할 땐 플러그 규격에 유의해야 한다. 이번에 구매한 미니 PC에 제공되는 전원 플러그도 국내 규격과 맞지 않아 호환 케이블을 따로 구매했다. 기본 어댑터의 정격 출력은 19V 4.74A로 전력 소모량은 약 90W다. USB-PD 충전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까 연결해 본 결과, 후면 USB-C 단자는 PD 규격을 인식하지 못했고 PD to DC 변환 젠더를 사용해 전원 단자에 연결해도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크기는 작지만 외부 단자는 많다. USB-A 단자는 전·후면에 각각 2개씩 탑재됐다. 후면에는 USB-C, 3.5mm 오디오, HDMI 2개, RJ45 유선랜 단자가 있다. USB-C는 디스플레이포트(DP) 출력도 지원한다. 따라서 미니 PC에 모니터를 최대 3대까지 연결하고 쓸 수 있다. 단, 모니터가 늘어날수록 처리해야 할 그래픽 데이터도 함께 늘어나 성능이 떨어지므로 고사양 게임을 할 생각이라면 모니터는 한 대만 연결하길 권장한다.
바닥 나사 4개를 풀면 램과 SSD를 장착하는 슬롯이 보인다. 램은 노트북용 DDR4 규격을, SSD는 M.2 규격을 지원한다. 조립 난이도는 낮은 편이다.
게임 성능 높이려면 그래픽 품질 낮춰야
※ 사용 환경 : (CPU)AMD 라이젠 9 5900HX / (RAM)KLEVV DDR4-3200 16GB 2개 / (SSD)삼성 PM981 256GB / (OS)윈도우11
조립과 초기 설정까지 마치고 《호그와트 레거시》를 실행했다. 처음엔 렉이 상당히 심했다. 알고 보니 이전에 다른 PC로 플레이할 때 그래픽 품질을 가장 높은 '울트라'로 설정했는데, 스팀 클라우드를 통해 해당 설정이 미니 PC에도 동기화됐기 때문이었다.
혹시 동일한 문제를 겪었다면 스팀 프로그램의 라이브러리 탭에서 '호그와트 레거시'를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클릭한 다음 [속성] > [업데이트] > [Steam 클라우드]에서 '호그와트 레거시에 대해 Steam 클라우드 동기화 사용' 항목을 체크 해제하자. 성능이 크게 차이 나는 PC를 여러 대 사용할 경우 게임 그래픽 품질 설정이 동기화되면 성능이 낮은 PC에서 렉이 발생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그래픽 설정부터 살펴봤다. 《호그와트 레거시》는 '하드웨어 벤치마크'라는 기능을 지원한다. 하드웨어 정보를 수집한 다음 해당 PC에 적합한 그래픽 품질 옵션을 자동으로 설정하는 기능이다.
미니 PC로 하드웨어 벤치마크를 실행하자 모든 그래픽 품질 옵션이 '낮음'으로 설정됐다. 라이젠 9 5900HX가 노트북용 CPU인 데다 외장 그래픽카드가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추천 옵션으로 게임을 실행해 봤다. 게임 성능은 1초에 화면이 몇 번 바뀌는지 나타내는 '프레임 레이트(fps)'로 확인했다. 해상도 1920x1080 풀 HD 모니터에서 전체 화면으로 실행하자 프레임 레이트는 초당 27프레임 정도로 측정됐다. 성능이 좋다고 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그래픽 품질도 아쉬웠다. 게임 내 캐릭터나 각종 물건의 윤곽이 계단처럼 끊겨 보이고 질감도 밋밋했다. 《호그와트 레거시》를 플레이하다 보면 맵에 적이나 아이템이 종종 나타나는데, 그래픽 품질을 너무 낮추면 배경과 잘 구분되지 않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래픽 품질 옵션을 모두 '중간'으로 올려봤다. 프레임 레이트가 22프레임으로 떨어졌다. 대신 화질은 그럭저럭 볼 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능에서 문제를 보였다. 전투 중 화면이 뚝뚝 끊기다 보니 적에게 마법을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성능과 화질 아쉽다면 '업스케일링' 활용해 보자
다행히 《호그와트 레거시》는 주요 그래픽카드 제조사의 업스케일링 기능을 지원한다. 업스케일링은 게임 그래픽 데이터를 낮은 해상도로 처리한 다음 모니터 해상도에 맞게 늘리면서 화질을 보완하는 기능이다.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줄어들기 때문에 게임 구동 성능이 개선된다.
《호그와트 레거시》가 지원하는 업스케일링 기능은 △엔비디아(NVIDIA) DLSS △엔비디아 NIS △AMD FSR 1.0 △AMD FSR 2.0 △인텔 XeSS다. 라이젠 CPU가 탑재된 미니 PC는 엔비디아 DLSS를 제외한 나머지 기능을 모두 선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든 기능에 화질과 성능 중 어떤 걸 중시할지 세부 옵션을 통해 정할 수 있었다.
그래픽 품질 옵션을 '중간'으로 설정한 상태로 FSR 1.0을 활성화했다. 세부 설정은 △고품질 △품질 △균형 △퍼포먼스로 나뉘는데, 프레임 레이트는 각각 24, 34, 36, 41로 측정됐다. 화질은 FSR 1.0을 적용하기 전보다 흐려졌다. 고품질 옵션조차 원본보다 약간 흐리다는 게 체감될 정도였다. 특히 퍼포먼스 옵션으로 설정하면 화면이 흐려 집중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FSR 2.0이 더 유용했다. 세부 옵션은 △품질 △균형 △퍼포먼스 △울트라퍼포먼스로 나뉘는데 프레임 레이트는 각각 27, 35, 34, 39프레임으로 측정됐다. 성능은 FSR 1.0과 비슷하지만 화질은 훨씬 좋았다. 울트라퍼포먼스로 설정하면 약간 흐린 게 체감됐지만 퍼포먼스 옵션부터는 보기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품질 옵션의 화질은 FSR을 적용하기 전보다 나을 정도였다.
인텔 XeSS와 엔비디아 NIS는 각각 인텔과 엔비디아 그래픽카드가 없는 기기에도 호환된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성능이나 화질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XeSS의 세부 옵션은 △고품질 △품질 △균형 △성능으로 나뉘며 프레임 레이트는 각각 16, 20, 18, 20프레임으로 측정됐다. 화질은 고품질로 설정해야 볼 만했지만 성능이 너무 낮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어려웠다.
NIS도 △고품질 △품질 △균형 △성능으로 나뉘는데 프레임 레이트는 각각 28, 33, 35, 41프레임이었다. 게임 성능은 FSR 2.0과 비슷하지만 화질이 너무 흐려졌다.
다양한 옵션을 하나씩 설정해 본 결과 그래픽 품질 ‘중간’에 FSR 2.0 ‘퍼포먼스’ 옵션으로 설정했을 때 화질과 성능을 모두 챙길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품질·고성능 양립은 어려워...어느 정도 타협 필요해
외장 그래픽 카드가 없다 보니 높은 화질을 유지하면서 원활하게 구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행히 FSR을 지원해 아쉬운 화질을 보완하면서 성능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성능이 아쉽다고 평가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반 풀 HD 모니터에서조차 초당 30~40프레임 정도를 간신히 유지하다 보니 화면이 조금씩 끊겨 보이는 게 체감됐다. 해상도와 주사율이 높은 게이밍 모니터를 사용한다면 요구 성능은 더욱 오를 테다.
창 모드로 실행했더니 해상도가 낮아져서인지 성능은 다소 개선됐다. 미니 PC로 《호그와트 레거시》를 플레이하려면 해상도, 화질, 성능 중 최소 한 가지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크플러스 이병찬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