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연구개발(R&D)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역대급으로 높은상황입니다. 이럴 때 R&D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서울대 명예교수)가 8일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프라자 강당에서 진행된 전임출연연구기관장협의회(이하 전출협) 주최, 제49회 과학기술 정책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 포럼 주제는 '패러다임 대전환시대 국가출연연구기관의 역할'이었다. 이 부의장은 주제 강연을 맡아 출연연의 변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출연연이 우리 국가발전의 중요 축으로 과거 위상이 대단했으나, 현재에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 부의장은 “출연연이 1960~70년대 경제발전 초기에 굉장한 영향을 끼쳤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역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며 “투자에 비해 과학기술프론티어 개척역량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많이 열세”라고 전했다.
게다가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성장동력 상실 △인구감소 △탄소중립 △미중갈등 등 다양한 안팎의 위기가 몰려오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시류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이 부의장은 “양자컴퓨팅, 합성생물학, 6G 등 미래 기술에 확실한 우위를 가진 국가가 없다”며 “모두가 동일 출발선상이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서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변화와 혁신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이노베이션 파워, 새로운 기술이 국가 성공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출연연이 이를 위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이 부의장은 “외부환경 문제가 있지만 출연연 내부에서도 역량을 높여야 한다”며 “국가 전략분야에 적시 대응할 수 있는가, 내부에서 돌아볼 것은 없는가, 출연연뿐이다 하고 맡길수 있는게 출연연에 있는가, 출연연이 과기혁신의 표상이 돼 리더역할을 할 수 있는가 등 질문을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 부의장은 최근 국가 R&D 예산 삭감 사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대통령은 성장은 과기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확신을 늘 갖고 있다”며 “다만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견해도 확실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 모든 논의가 'R&D 예산 액수'에만 맞춰진 것은 좋지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현재 상황을 과기 혁신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출연연이 다시금 우리 과기혁신 리더역할로 본보기 해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후 최영명 전출협 명예회장을 좌장으로 진행된 패널 토론 참여자들은 모두 이 부의장 의견에 큰 틀에서 동의를 표했지만, 출연연의 현 상황에 정부 등 외부요인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었다.
패널토론 참가자들은 출연연이 보다 발전하고, 제 역할을 다 하기 위한 개선점들을 건의했다.

황지호 KISTEP 전략기술기획본부장은 출연연이 △국가차원 요구에 부응하는 임무달성, 프로젝트매니저(PM) 중심의 유연한 연구조직 △산학연 협력에 대한 출연연의 매개와 협력 추구 △국가수요 대응, 첨단산업 대응, 중소기업 지원 플랫폼 구축 등으로 역할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총괄기능의 전략화, 현 3년인 출연연 기관장 임기 재검토,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체계 변화와 안정적인 인건비 확보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를 이은 한선화 전 KISTI 원장은 현재 출연연 문제가 '자율과 책임'이라는 근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율과 책임을 담보하려면 정부는 기본원칙만 제공하고, 책임을 다했는지 평가하면 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역시 PBS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형발사체 사업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출연연,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담당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인구감소 및 인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출연연 인력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며, 박사후연구원, 초빙연구원, 학생연구원제도를 강화해 연구현장에 젊은피가 지속적으로 수혈되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최병욱 전 한밭대 총장은 출연연이 '기업·대학이 할 수 없는 연구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대기업보다는 창의혁신 스타트업을 이끌어가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출연연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된 연구 분야로 인공지능(AI)과 바이오를 제시했다. 최 전 총장은 “과거 중화학 입국, 정보통신입국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바이오입국, AI입국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 총장은 이밖에 출연연도 대학처럼 인적자원양성에 힘을 보태야한다는 뜻도 전했다.
이주진 전출협 회장은 이날 토론과 관련, “우리들의 앞으로 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고, (출연연) 현역과 원로가 힘을 합쳐 할 일이 많은 상황”이라며 “출연연 관련된 이들의 협력과 노력으로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 크게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