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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눈부시다.

K콘텐츠의 글로벌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 요즘이다.

물론 K콘텐츠의 글로벌 히트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대장금'과 '오징어 게임'의 히트는 그 규모나 수준을 떠나, 전혀 다른 차원의 글로벌 히트다. K팝의 동방신기와 BTS가 다른 글로벌 소비를 이끌어낸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엔 아시아 중심의 국지적이고, 마이너 플랫폼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반해 지금은 미주 유럽 등지까지 포함한 시장 확대와 메이저 플랫폼을 통해 초단기에 대규모 수요를 이끌어 낸다는 면에서 전혀 다른 양상이다.

K콘텐츠 글로벌 성장의 한 가운에 K드라마가 자리잡고 있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뿐 아니라 '닥터 차정숙', '킹더랜드'와 같이 TV와 OTT 동시 공개 작품도 글로벌 상위 랭킹에 오르고 있다. 넷플릭스 외에도 '재벌집 막내아들'을 글로벌 독점 유통한 VIU, '카지노'에 이어 '무빙'을 흥행시킨 디즈니플러스도 K콘텐츠 확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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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

이 배경엔 OTT의 성장과 거기에 발맞춘 발 빠른 적응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2017년 SLL이 넷플릭스와 국내 최초로 계약을 맺고 협력을 시작한 이래 글로벌 OTT는 K드라마의 새로운 유통 경로로 자리 잡았고, 팬데믹 기간은 글로벌 시청자들이 K드라마라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K드라마의 인기는 식지 않고 더 광범위한 지역에,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면 이런 눈부신 행보는 계속될 것인가?

낙관적이진 않다. 도리어 위기 신호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K드라마 성장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내 방송사, OTT 등 플랫폼의 수익성 악화, 제작비 급상승 등이 불거지며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의 위기론도 크게 대두되고 있다.

시청자들이 OTT 플랫폼 시청을 선호하면서 TV 채널의 시청자 수는 줄어들고, 광고 수익 중심의 방송사들은 제작비가 가장 높은 드라마 수부터 하나 둘 줄여 나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환영받고 있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그 동안 주 2회 편성을 거의 공식처럼 했으나 최근엔 주 1회 편성되곤 한다. 심지어 주말을 제외한 프라임 타임대에 드라마 편성을 폐지하고 있다. 제작비 급상승과 광고 수입 축소를 견디지 못해 편성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티빙, 웨이브, 왓챠 등 토종 OTT 플랫폼도 유료가입자 증가에 한계를 보이며 대규모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특히 영상 콘텐츠가 선보이기까지 기획, 개발, 제작, 후반작업 등 준비기간이 최소 2~3년 이상 소요된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지금의 위기는 수년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내 플랫폼 위기의 배경에는 콘텐츠 제작비 상승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방송영상 시장의 글로벌화와 맥을 같이 한다.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의 제작비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글로벌 OTT에 공급되는 드라마 제작비는 회당 30억 원에서 많게는 50억 원까지 기록하며, 세계 2위 수준인 영국에 육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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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TV 카테고리 영어권과 비영어권 순위를 통합한 차트에서도 대표적인 K드라마 오징어게임(Squid Game)은 1위를 유지 중.

불과 4~5년 전에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회당 평균 제작비는 5~7억 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OTT가 K드라마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이후 매년 제작비는 20~30%씩 오르고 있다. 미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가성비 좋다는 평도 있으나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 비싸진 한국 드라마를 구매할 수 있는 해외 시장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전통적인 K콘텐츠 수요처인 아시아 지역 플랫폼도 이젠 한국 드라마 가격 상승을 따라오지 못하고, 그 빈 자리는 태국 중국 등의 저가 콘텐츠가 메우고 있다.

물론 제작비 상승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큰 스케일의 콘텐츠도 만들 수 있어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한국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 다만 그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며 이를 국내 방송사와 OTT 플랫폼이 한국 시장 규모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 콘텐츠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플랫폼은 글로벌 OTT가 거의 유일하며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제작사들이 IP(지식재산) 소유를 포기하고 단순히 콘텐츠 공급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사업자가 IP를 지속 보유하며 글로벌 OTT와도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려면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에서 매출과 수익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콘텐츠 산업에 위기가 닥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한한령이라는 예측불가한 위기가 있었다. 드라마 유통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 시장이 갑자기 막혀 당시 K 드라마엔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OTT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결과적으로 더 넓은 글로벌 경쟁의 무대로 나아갔고, 시장을 대폭 키웠다.

물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시장은 체감하기 쉽지 않다. 광고를 바탕으로 구독료 없이 시청할 수 있는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플랫폼이 미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의 콘텐츠 사업자가 크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콘텐츠 수출을 넘어 해외 제작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 직접 현지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고 제작해서 유통까지 하는 스튜디오 사업 모델을 전개할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K드라마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접목해 공동제작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 한국을 중심으로 한 시장 인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SLL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한 글로벌 제작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산하 15개 레이블과 연계한 공동 제작과 현지 제작 드라마를 글로벌 유통해 K콘텐츠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계획이다.

민간 사업자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정부 지원도 중요 역할을 할 것이다. 현지 시장에 대한 정보 파악, 우호적 사업 환경 조성, 장기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지원, 수익률을 강화할 수 있는 저작권 보호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이 있다면 성장세 유지와 확대가 좀 더 빠르게 이뤄질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콘텐츠 산업이 국가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발표된 '영상 콘텐츠 제작비용에 대한 세액 공제 확대'를 다시 한 번 환영하며 IP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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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문 SLL 대표

○정경문 대표는…

콘텐트 기획 및 개발, 제작, 투자, 배급까지 콘텐트 사업의 모든 가치 사슬을 어우르는 한국 최초의 완성형 스튜디오인 SLL(에스엘엘중앙)의 CEO다. 일간스포츠 기자 생활을 거쳐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 워크원더스, 아이에스일간스포츠, 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 중앙방송, JTBC플러스, JTBC콘텐트허브 등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정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