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ner takes it all(승자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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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삼성전자 SAIT 회장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 회장이 디지털 시대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승자 독식'. 겨우나마 시장 2등은 이름을 기억해줄 순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3등은 아예 살아남기도 힘들다. 김 회장은 “실체가 없고 시공을 초월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정도와 파급력이 더욱 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회장은 오늘날 일상이 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PC 시대부터 출발했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디지털의 파급효과를 바라 본 사람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바뀌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경기를 본 후 사람들은 인공지능(AI)에 놀라움을 느꼈고 데이터가 굉장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디지털 전환(트랜포메이션)의 영향을 AI로 실감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AI는 이제 인간 삶의 일부가 됐다. 일각에서는 AI 위험과 부작용을 걱정하며 개발 모라토리엄(유예)을 주장하기도 한다. 김 회장은 AI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 있지만 '대세'는 막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AI를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실제로 AI로 생산성을 높여 국내총생산(GDP)을 올리는데 기여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전자신문은 창간 41주년 특별기획 '러브 디지털, 체인지 코리아'를 통해 우리나라 공학·산업계 기술 발전과 창조적 공학 기술 개발로 대한민국 공학 미래를 준비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공학한림원 회장이자 삼성전자에서 40년 넘게 반도체 길을 걸어온 김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회장은 최근 가속화하는 디지털 대전환과 AI 확산부터 이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요소 반도체 산업, 국가 역량의 기반이 되는 인력 양성까지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디지털 전환이 화두다. 디지털 전환의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산업 분야마다 다르다. 디지털화가 핵심이 되는 정보통신기술(ICT)은 큰 변화를 이뤘다. 그러나 농업·수산업·광업 등 다른 산업에서 디지털화가 얼마나, 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인간과의 연결이라든지 일자리 관련 등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겠지만 이런 데이터가 어떻게든 디지털을 거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도 핵심 키워드다. AI 산업 현황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모델을 구축하려면 엄청난 컴퓨팅 자원을 소모한다. 최근 AI 스타트업도 많이 있지만 제대로 된 모델을 만들려면 상당한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가령 엔비디아에 대적하기 위한 AI 반도체 칩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특히 언어의 경우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진 것이 영어일 것이다. 오픈AI나 구글 등 기업이 엄청난 데이터를 학습시킬 수 있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대형 언어모델(LLM)에서는 상당히 뛰어나다고 본다. 특히 한국어 기반 AI에서는 (외국에) 절대로 영역을 내줘서는 안 된다. 이를 토대로 시장을 넓혀가야 한다. 이 부분은 공학한림원에서도 신경 쓰고 있다. 다른 국가 공학한림원과의 교류로 AI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도 전쟁을 방불케 한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영향력이 세계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출발은 미국이다. 초기에는 설계부터 공정(팹), 조립까지 모두 통합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분리되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맡기는 것이다. 설계나 제조뿐만 아니라 재료·설비까지 나뉘어 전 세계가 하나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미국이든 어느 나라든 자국 위주로 하겠다고 한다. 전체 생태계를 다 끌어안으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겠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이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가.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잘한 것은 메모리였다. 지금은 메모리 60% 이상을 한국이 장악하고 있다. 더 이상 점유율을 올리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으려면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을 봐야 한다.

그것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와 설계(팹리스)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선 순위가 중요하다. 해외에서 파운드리를 제대로 하는 건 TSMC 정도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쌓아온 제조 역량으로 경쟁하려면 할만한 부분이다. 메모리 역량을 파운드리로 확대해 '제 2의 메모리'처럼 만드는 것이다.

팹리스는 아직 일 대 일로 글로벌 기업과 견주기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착실히 대비해야 한다. 미래 잠재력은 분명하다. 삼성전자가 있고 현대차가 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자동차에 들어가는 시스템온칩(SoC)은 충분히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분야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를 탄탄하게 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상생 협력이 강조된다.

▲과거 전체 글로벌 에코시스템에서는 그 가치를 잘 이끌어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공급망 위기가 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하기 전까지는 공급망 안정화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오니 (반도체 생산이) 중단되거나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자각을 했다.

당시 일본의 수출 제한조치가 예상되자 매일 아침 7시에 회의를 했다. 핵심 소재를 확보하지 못하니 구매팀을 보내고 데일리 결산 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국내 소재 기업을 접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불산,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용 포토레지스트(PR) 개발을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씩 소재 공급을 시작하고 눈에 확 띄게 많지는 않지만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부분이 상생 협력이라고 본다.

-공급망 문제 뿐 아니라 인력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미래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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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삼성전자 SAIT 회장(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SAIT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개인적으로 '독자 공급망 구축과 문제점'이라는 글을 썼다. 글에서 짚은 것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돈은 문제가 아닌데, 사람과 시간이 문제라는 점이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필요한데 많은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개별 인재가 미국 등 해외로 나가는 걸 뭐라고 할 순 없다. 개인이 능력을 갖추면 미국 회사로 가고 싶어 한다. 누구나 인식하는 문제다. 또 이들이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풀어야 할 문제는 맞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더욱 심해지면 위험(리스크)이 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결국 '더 많이 길러내는 것' 밖에 없다.

왕도는 없지만 인재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 삼성전자도 계약학과를 통해 반도체 인재를 키우고 있다. 공학한림원도 젊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포럼을 열고, 회원사도 각종 컨설팅을 지원해준다. 중고생 대상으로 공학도서도 발행한다. 젊은 인재가 공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이 인재 부족을 위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올해 1월부터 공학한림원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취임 후 주력한 것은 무엇인가.

▲최우선 과제는 공학한림원의 '품격 향상'이다. 회장 임기 동안 화두가 아닐까 싶다. 공학한림원은 수백명의 집단 지성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집대성해 오피니언 리더 뿐 아니라 싱크탱크 역할을 공고히 했다고 본다. 특히 '빅 블러'로 대변되는 탈 경계 시대에는 이 같은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몇가지 사례가 있다. 산업미래전략위원회를 통해 '대한민국 2040: 대체불가의 나라'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연 바 있다. 100여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글로벌 경제의 복합 위기 상황과 저성장 구조 고착화, 기후변화 대응, 가파른 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난제 해결과 국가 경제 성장을 견인할 집단 지성 연구를 진행했다. 또 최근 자율 주행 포럼을 개최해 차량과 인프라의 융합, 주행 사업자의 도입 등 기존 정책과 차별화된 비즈니스 전략 등 다각적 측면에서 융합 전략을 제시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에도 힘쓰는 것으로 안다.

▲한국의 우수 공학 기술을 알리고 협업을 추진하는데 꼭 필요한 활동이다. 스웨덴 공학한림원과 양국 주요 기업 경영진으로 구성된 '최고경영인평의회'를 운영, 산업계 대표들 간 정보 교류, 양국 비즈니스와 산업계 이슈에 대한 협의 등 정책 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인도 공학한림원과는 지난달 한-인도 워크숍을 공동 개최, '항공 우주 기술 개발'을 주제로 연구개발(R&D) 현황을 공유하고 우주 탐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영국 공학한림원과는 정책, 기술, 비즈니스 등 다각적인 교류로 실질적인 산업 발전 및 시장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영국 공학한림원과는 최근 풍력 발전과 관련한 기술 교류 및 협업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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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삼성전자 SAIT 회장(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김기남 회장은...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삼성전자 SAIT 회장은 1958년생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 KAIST 전자공학 석사, 미국 UCLA에서 전자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기술팀에 입사해 1985년 반도체 연구소 D램 팀장을 맡았다.

1997년 1GB D램 개발 공로로 38세 나이로 최연소 이사 대우로 승진했다. 2009년 삼성전자 DS 부문 반도체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2010년 51세로 최연소로 사장 승진했다. 2013년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4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으로 다시 반도체 현장에 복귀했다 2014년 말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겸 DS 부문 시스템LSI 사업부장에 올랐다. 2017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 부문장이 됐고 2018년 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끌다 2021년 말 부터는 SAIT 회장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장을, 2014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2015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정된 후 2019년 공학한림원 이사장에 올랐다. 올해 1월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임기는 2년이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