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상위 10개국 해외 특허출원 현황첨단기술 해외유출 실태

쓸만한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 세계 무역 규모 8위까지 올라서기까지는 수출과 제조업 경쟁력이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첨단산업의 약진과 핵심기술 지식재산권(IP) 확보 노력은 세계 무역시장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최근 사회 전반에서의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의 부상으로 IP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을 넘어 국가 단위의 신기술 특허와 표준 선점 작업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핵심 특허에 대해서는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AI 미래시대 준비해야

대한민국은 세계 선두권 수준의 IP 강국이다. 특허는 물론 실용신안, 디자인 등 각종 IP 순위에서 항상 상위 5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제특허 출원은 전년 대비 6.2% 증가, 2만2012건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세계 4위에 올랐다. 기업으로 보면 특허출원 톱 10에 한국기업 2곳(삼성, LG)이 포함됐으며 한국 특허청은 선진 5개국 특허청인 IP5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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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0개국 해외특허출원 현황(특허청)

산업계는 우리나라가 IP강국으로서 후발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경쟁력을 한단계 높이려면 첨단 제조업은 물론 새로운 게임 체인저인 AI와 디지털 전환 중심의 융복합 분야 핵심 IP 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특허청에 등록된 4차 산업혁명 관련 주요 8개 기술의 특허출원 수는 10년간 연평균 14.7%씩 성장했다. 2013년 7057건에서 지난해 2만4341건으로 10년간 약 3.4배 증가했다.

4차 산업혁명 주요 8개 기술은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디지털헬스케어, 바이오마커, 지능형로봇, 자율주행, 3D프린팅 등이다. AI 분야가 가장 높은 비율(27.2%)을 차지했다. 디지털헬스케어(23.0%), 자율주행(21.7%) 분야가 뒤를 이었다.

핵심 특허 확보와 글로벌 표준 선도는 기업 단독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 차원의 지원와 외교노력, 사회의 문화적 수용, 정치의 규제·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AI 분야가 대표적이다. 오픈AI가 챗GPT로 단숨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대한민국은 후발주자다. 우리 기업은 개인정보 이슈 등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대두되는 AI 규제론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UN은 최근 AI 발전에 따른 위협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며 AI 규제 전문기구 설립 계획을 밝혔다. OECD는 'OECD AI 권고안'을 공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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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관련 제도 및 정책 현황

◇R&D와 IP 내실화 필요

기업이 핵심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 특허정보를 분석하고 최적 R&D 방향 설정, 기술 난제 해결, 특허장벽 극복, 핵심·표준특허 선점으로 이어지는 지재권 연계 R&D, 즉 IP-R&D를 추구해야 한다. 특허 역시 글로벌 표준을 염두에 둔 표준특허를 목표로 해야 한다. 표준특허는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정한 표준기술을 포함한 특허로 경쟁사업자들이 이를 우회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R&D 대비 특허 효율은 높지 않다. 2019년 연간 특허 건수는 3057건으로 OECD 37개국 중 4위지만 'R&D투자 백만달러 당 특허 건수'는 0.03건으로 OECD 37개국 중 11위에 머물렀다. R&D 대비 지식재산사용료 수입은 지난해 80억달러 수준으로 사용료 지급액 111억달러보다 적고, 순위는 13위다. 외형상으로는 IP 강국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돈이 되는 특허는 많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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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인실 특허청장은 전자신문에 “AI와 디지털전환 시대에선 첨단기술 표준을 주도하는 기업이 시장 우위를 점한다”라며 “국제 표준에 적극 대응하고 R&D 효율화를 통해 핵심기술 표준특허를 빠르게 확보해야”한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한국이 IP 경쟁력 강세를 보이는 통신 분야는 물론, 상대적으로 취약한 바이오 분야에서도 글로벌 기업과 단체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통신 분야는 이미 6세대(6G) 이동통신 표준 선점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다. 우리 정부와 민간기업은 6G포럼을 결성, 표준 개발에 대응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에 전문가를 파견하고, 글로벌 표준특허 주도권 선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ITU의 6G 논의에 적극 참여해 표준화 그룹인 '6G 비전 작업그룹' 신설을 제안, 수용했다.

바이오시밀러를 주력으로 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기업의 특허 방어에 대응하는 것이 과제다. 글로벌 제약사는 오리지널 블록버스터 의약품 물질특허 등록 후 신규물질 개량, 용도 특허, 제제 특허 등 추가 특허를 잇달아 출원하는 '에버그리닝'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신약 개발사들의 진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우리 기업에는 리스크 요인이다.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특허 전략을 일찌감치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술 지키기'도 중요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대기업 직원이 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했다 덜미가 잡혔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AI와 디지털전환으로 이 같은 기술 탈취 시도는 더 고도화할 전망이다.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로 재산권을 보장받는 것 만큼 이를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다.

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평가에서 우리나라의 IP보호순위는 64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특허 출원 세계 4위 성적표에 비해 미진하다. 그나마도 2017년 44위까지 떨어졌던 것이 일부 회복된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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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해외유출 실태(자료 국가정보원)

산업계는 기술 탈취 범죄에 대한 양형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기술 탈취 방지대책 수립, 한국형 증거 수집 제도 도입, 특허청 행정조사의 실효성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탈취되는 기술은 대부분 국가경쟁력에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기술이다. 우리나라 역시 적발된 해외 유출 기술 중 약 40%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기술로, 80% 이상이 반도체·전기전자·디스플레이·자동차·정보통신 등에 쏠려있다. 향후에는 최근 출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AI가 타깃이 될 것이 뻔하다.

스타트업·벤처기업 기술 보호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역시 IP 관련해 자주 지적되는 문제다. 상품을 공동 개발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기술을 도용하거나, 위탁업체가 특허권 지분을 요구하는 등 유형도 다양하다.

IP 분쟁도 격화되고 있다. 기업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공동 연구개발과 사업화 추진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소유권을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은 사전에 체크하고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청장은 초연결 시대 AI와 디지털 전환 융합 분야가 넓어지면서 표준특허를 중심으로 한 IP 분쟁이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9년 노키아의 다임러 통신표준특허 침해 소송을 예로 들며 “통신 회사가 자동차 회사에 표준특허 소송을 제기하는 등 산업간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라며 “R&D와 표준화, 특허를 서로 연계한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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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 양승민 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