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유통업법을 유통 시장 변화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는 학계 주장이 나왔다. 유통사와 납품업체간 거래 관계에 과거에 설정한 잣대를 일률 적용하는 것은 시장 경쟁과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e커머스 성장 등 새로운 유통 시장에 맞춘 법령 정비와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경쟁법학회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의 법체계적 지위와 주요 쟁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 제정·시행이 10년이 지나면서 제정 당시 입법 배경이 된 국내 유통 시장 상황은 급속히 변했다”며 “유통 거래 규제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납품업체에 대한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사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지난 2012년 도입됐다.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인 오프라인 점포를 운영하거나 매출액 1000억원이 넘는 사업자가 적용 대상이다. 대금감액, 반품금지, 판촉비용 전가 등 개별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에 방점을 두고 조문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홍 교수는 “대규모유통업자는 법이 정한 기준과 방식으로만 사업할 수밖에 없어 사업모델이 고착화되고 판촉 활동 위축이 일어났다”며 “역설적인 문제는 유통업체가 성장해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이 되는 순간 성장과 경쟁 과정에서 정체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사이 다양한 거래 행위를 제한하다 보니 신규 사업자 성장을 제한하고 소비자 후생도 저해한다는 설명이다.
신영수 경북대학교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 설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래상 지위 격차가 미세한 경우에도 유통업체와 납품업체를 무조건 갑을 관계로 규정해 법안을 적용하는 것은 본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 골자다.
신 교수는 “대규모유통업법이 어느 쪽이 우월한지 모호하거나 거래 단면에 따라 상반된 지위에 놓인 당사자들의 이익 다툼에 동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규제를 적용할 경우 거래 질서를 왜곡하거나 당사자간 불균형을 임의로 조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난설헌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 환경에 맞춘 규제 합리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유통업자라고 해서 '막강한 구매력을 보유한 수요자'로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며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합한 관련 법령 정비와 유통 규제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맹본부 자체브랜드(PB) 상품에 하도급법이 아닌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통 분야에 하도급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장려금, 판촉비용, 종업원 등 대규모유통업법에서 허용하는 행위가 금지된다”며 “두 법이 상충될 경우 산업 특성을 고려한 대규모유통업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