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한국 패키징은 왜 대만에 항상 뒤질까

2016년 삼성전자는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 삼성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던 애플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전량 TSMC에 빼앗긴 것이다. 애플이 어떤 회사인가. 휴대폰을 뒤엎고 스마트폰을 새롭게 정의한 곳이다. AP는 아이폰의 핵심 두뇌였는데, 삼성은 이를 놓쳤다.

이유는 패키징 기술에 있었다. TSMC가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로 불리는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2016년부터 애플 물량을 싹쓸이했다. 패키징은 가공이 끝난 실리콘 웨이퍼에서 자른 칩(Die)을 포장하는 작업이다. 외부 습기나 불순물, 충격으로부터 칩을 보호하고 메인 인쇄회로기판(PCB)과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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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A16 <사진=애플>

패키징이 왜 승부를 갈랐는지 기술적 설명을 부연하면, 팬아웃은 입출력(I/O) 단자 배선을 반도체 칩(Die) 바깥으로 빼내 I/O를 늘리는 것을 뜻한다. 반도체는 성능이 발전하면서 I/O가 증가한다. 반면에 칩 면적은 좁아져 I/O 단자수를 늘리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팬아웃이다. 팬아웃을 하면 I/O를 늘리는 동시에 반도체 IC와 메인 기판 사이 배선 길이가 단축돼 전기적 성능과 열효율이 향상된다. 팬아웃을 한 뒤 웨이퍼와 같은 원형 캐리어에서 칩을 패키징 하는 것이 FO-WLP로, FO-WLP를 활용하면 값비싼 패키지 PCB가 필요 없고, 공정 횟수도 단축돼 원가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TSMC가 FO-WLP를 세계 최초 상용화해 애플 AP를 독점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다.

7년이 지난 2023년 현재 삼성전자는 또 패키징 기술에 발목 잡힌 모습이다. TSMC가 'CoWoS'로 불리는 이종접합 패키징으로 인공지능(AI) 시대 가장 잘 나가는 엔비디아 물량을 독식하고 있어서다. 이종접합 패키징은 쉽게 말해 CPU·GPU·메모리와 같이 서로 다른 성격의 반도체를 결합하는 기술을 뜻한다. 엔비디아 젠슨 황 회장은 대만으로 날아가 증설을 요구할 정도로 TSMC의 패키징 기술은 핵심 중의 핵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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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어디서부터 이런 차이가 계속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구조는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설계, 패키징 및 테스트가 고르게 발전했다. 2021년 기준 대만의 반도체 산업 위상은 파운드리 1위, 팹리스 2위, 패키징 및 테스트 2위다. 각 분야가 균형 있게 발전하면서 가치사슬을 만들고 거대 생태계를 구축한 결과, 엔비디아·애플·퀄컴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대만을 찾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생태계가 없다. 글로벌 10대 반도체 후공정(OSAT), 즉 패키징·테스트 기업 순위에서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 시장조사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후공정 매출 순위는 1위 ASE(대만), 2위 앰코(미국), 3위 JCET(중국) 등이다. 1위 ASE 점유율이 30%에 육박하는 데, 한국은 후공정 업체를 다 합쳐도 10% 미만이다. 이마저도 메모리가 중심이어서,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더 취약하다.

대만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국은 메모리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출발선이 달랐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결과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손놓고 있으면 기회는 사라질 뿐이다. 취약한 기반에서 추격할 수 있는 방법은 협력 밖에 없다. 대기업·중견·중소기업이, 팹리스·파운드리·패키징·테스트 기업이 뭉쳐야 한다. 협업을 촉진하는 것이 우리보다 10년이나 앞선 대만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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