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시원한 여름 맥주, 과학 알면 더 맛있다!

'한여름 밤의 술'은 단연 맥주다. 열대야의 그늘 아래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은 하루 종일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선선하게 가라앉혀 준다.

'분노의 포도'를 터뜨린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도 “맥주 첫 모금의 맛을 당할 만한 것은 세상에 없다(There's nothing in the world like the first taste of beer)”고 하지 않았던가?

맥주도 와인처럼 종류에 따라 잔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맥주 애호가들은 거의 다 아는 상식이다. 향과 맛이 진한 에일(ale)은 둥글고 넓은 잔으로, 탄산의 시원한 느낌이 강한 라거(lager)는 길쭉하고 좁은 잔으로 즐긴다.

그렇다면 같은 맥주라도 유리병과 알루미늄캔, 어디에 담은 게 맛있을까? 병맥주와 캔맥주의 한판승부다. 맥주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과학 연구와 함께 톺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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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과학을 알면 더 맛있게 마시는 법을 찾을 수 있다. 출처: Shutterstock

◇병맥 vs 캔맥, 뭐가 더 맛있을까? 맥주 종류마다 다르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캐서린 프로무스 박사팀은 맥주의 종류에 따라 병 또는 캔과의 맛 조합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ACS Food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앰버에일과 인디아페일에일(IPA)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다.

여기서 잠깐, 에일 맥주란 무엇일까? 맥주는 발효 과정에 따라 에일과 라거로 나뉜다. 맥주를 발효시킬 때 온도가 높아 효모가 위로 떠오르면 상면발효, 온도가 낮아 효모가 아래로 가라앉으면 하면발효라 부른다. 각각 에일과 라거다.

앰버에일은 붉고 어두운색을 띤다. IPA는 홉을 많이 넣어 쓴맛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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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캔, 어느 쪽으로 마셔야 맥주가 더 맛있을까? 정답은 맥주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출처: Shutterstock

연구팀은 앰버에일과 IPA를 각각 유리병과 알루미늄캔에 담아 한 달 냉각한 뒤, 상온에서 5달 보관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맥주의 일반적인 유통과정 그대로다.

그다음 연구팀은 2주 간격으로 각 용기에 담긴 맥주 성분을 분석했다. 앰버에일은 유리병에 보관해야 맛이 잘 보존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앰버에일은 캔에 보관했을 때 고소한 향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에 변화가 많이 생겼다. 과일향이나 꽃향을 내는 에스테르 성분이 당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IPA는 보관 용기에 따른 성분 변화가 별로 없었다. 두 맥주에서 서로 다른 성분이 보관 용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IPA 맥주는 홉의 함유량이 많아 폴리페놀 성분이 화학적인 변화를 막는다는 것이다.

맥주의 성분이 보관 용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더 연구하면 맥주 종류에 따라 적합한 보관 용기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맥주가 당기는 이유는? “맛있으니까!”

고된 일이 끝난 뒤, '맥주 한잔'하고 싶은 기분은 왜 생기는 걸까? 그 이유가 알코올 성분이 아닌 '맛 그 자체'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데이비드 카레켄 미국 인디애나대 신경병리학과 교수팀은 맥주의 맛이 행복감과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나오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신경정신약물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참가자 49명에게 소주잔 반도 안 되는 15㎖가량의 맥주와 이온음료를 15분 동안 조금씩 나눠서 마시게 한 뒤, 도파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전자단층촬영장치(PET)로 비교했다. 맥주량을 매우 적게 해 혈중알코올농도가 변하지 않도록 대비한 것이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이온음료보다 맥주를 맛볼 때 뇌에서 훨씬 많은 도파민이 생성됐다. 참가자들도 맛은 이온음료가 좋지만, 실험이 끝나고 더 마시고 싶은 것은 맥주였다고 답했다. 카레켄 교수는 “맥주는 그 맛만으로도 도파민을 생성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도파민 생성은 알코올이 아니라 술의 맛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위아래, 위위 아래. 땅콩이 맥주 속에서 춤추는 이유는?

안주(按酒)는 '술을 누른다'는 뜻으로 술과 함께 먹어서 술기운을 눌러주는 곁가지 음식을 말한다. 시원한 맥주를 찾을 때, 땅콩은 맛 궁합이 찰떡이기 때문에 흔히 고르는 안주 중 하나다.

땅콩을 맥주를 담은 잔에 떨어뜨려 보라. 땅콩이 위로 뜰까, 아래로 가라앉을까? 정답은 어느 쪽도 아니다. 맥주에 빠진 땅콩은 춤을 추듯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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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이라 박사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마시는 맥주에 볶은 땅콩을 넣는 모습을 보고 연구에 영감을 얻었다. 해당 장면은 땅콩이 맥주 안에서 떴다 가라앉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 출처: Royal Society Open Science

독일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 뮌헨(LMU Munchen)의 루이스 페레이라(Luiz Pereira) 박사팀은 땅콩이 위아래로 춤을 추는 현상을 Royal Society Open Science에서 설명했다.

땅콩은 맥주보다 밀도가 높아 맥주에 빠지는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맥주에 녹아있는 탄산가스 즉 이산화탄소는 살짝 자극을 받으면 액체에서 기체로 바뀐다.

땅콩 표면 요철이나 온도가 자극이 되어 이산화탄소가 액체에서 빠져나와 거품이 돼 땅콩껍질 주변에 모이는 것이다. 이 무수히 많은 거품이 모여 물고기의 부레처럼 땅콩을 떠오르게 한다.

그 수많은 작은 거품은 땅콩을 어떻게 잘 떠오르게 만드는 걸까? 연구팀은 땅콩과 그 표면에 붙인 거품의 '접촉각'(contact angle)이 클수록, 거품이 더 많이 생기고 더 많이 모이는 것을 발견했다.

접촉각이란 유리 표면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을 예시로 들면, 유리표면과 물방울의 곡선 사이에 생기는 각도를 말한다. 이 물방울을 맥주 속의 거품으로 바꿔보면, 거품은 맥주잔에 붙는 접촉각보다 땅콩 표면에 붙는 접촉각이 더 크다. 따라서 탄산거품은 잔의 표면보다 땅콩 표면에서 더 쉽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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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과 맥주 속 기포의 접촉각과 유리와 맥주의 접촉각(왼쪽부터). 출처: Royal Society Open Science

거품은 땅콩에 강하게 달라붙기 쉬운 상태로 서로 결합하면서 점점 크게 부푼다. 이 때문에 땅콩은 거품을 올라타고 떠오르기 시작한다.

땅콩이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그 부분에 있던 거품은 터진다. 수면 아래 있던 거품도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면서 떠오르거나 다른 땅콩과 부딪히면서 터지게 된다. 그러면 땅콩은 부력을 잃어 바닥으로 가라앉고, 새로운 거품을 만나 다시 떠오른다.

페레이라 박사는 “땅콩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운동은 맥주 속의 이산화탄소가 다 빠지거나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무드에서는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과음은 금물이지만, 적당한 음주는 힐링이 될 수 있다. 무더운 여름밤, 땅콩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무더위를 날려버리고, 지친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래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또 맥주를 다룬 연구까지 알고 먹는다면,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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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날, 맥주 한 잔으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건 어떨까? 출처: Shutterstock

글:허두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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