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키보드, 글자 잘 안 지워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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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사용하다가 키보드 자판에 눈이 갔다. 2년 넘게 사용했는데도 글자 하나 지워진 게 없어 새삼 놀랐다. 이전에 썼던 노트북은 1년도 안 돼 키캡에 인쇄된 글자가 닳아 지워졌다. 이번 노트북은 비교적 최근 제품이라 안 지워진 걸까, 글자를 표시하는 기법이 달라진 걸까.

둘 다 정답일 수 있다. 키캡에 글자를 인쇄하는 기술이 수년간 정체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키보드에는 어떤 기술을 적용했길래 글자가 잘 안 지워질까. 주로 사용되는 방식과 특징을 알아봤다.


■ 최근 많이 사용하는, 키보드에 글자를 새기는 네 가지 방법

키보드에 글자를 새기는 데에는 △실크스크린 △레이저 각인 △염료승화 인쇄 △이중사출 4가지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1) 실크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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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스크린은 가장 고전적인 인쇄 방식이다. 키캡 표면에 잉크로 글자를 찍어낸다. 원하는 색으로 글자를 인쇄할 수 있으며 제조단가가 낮은 게 장점이다. 키캡 높이가 낮은 팬터그래프(Pantograph) 키보드나 노트북 키보드, 저가형 사무용 키보드에 주로 적용한다.

단점은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사용하다 보면 금새 염료가 떨어져 나가 글자가 지워진다. 이전에 사용했던 노트북 키보드 글자가 1년도 안 돼 지워진 건 실크스크린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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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주변에 투명한 막이 덮인 듯하다면 내마모성 코팅을 덧씌웠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실크스크린 방식을 적용해도 글자가 잘 안 지워지는 경우가 있다. 염료 위에 내마모성이 높은 보호 코팅을 덧댔기 때문이다. 이런 키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자 영역 주변으로 빛이 살짝 반사되는 투명 코팅 층이 보인다. 팬터그래프나 노트북 키보드에 이런 코팅 처리가 된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글자 촉감은 호불호를 가른다. 키캡 표면에 글자를 인쇄한다는 특성상 글자 모양대로 미세하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타이핑하다 보면 손끝에 걸리는 느낌이 자주 든다. 물론 누군가에겐 이런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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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모양대로 LED 빛을 투과하기 위해 글자를 제외한 영역만 도색하는 경우도 있다

키보드에 LED 조명이 내장되면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글자를 그리는 게 불가능하다. 빛이 잉크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키캡을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글자 이외 영역만 도색한다. 이 방법은 비교적 마모에 약하다. 타이핑하다 보면 글자가 손에 걸리고 도색이 벗겨지기 쉽다.

2) 레이저 각인

레이저 각인 방식은 키캡 표면을 레이저로 태워 글자를 그린다. 이렇게 새긴 글자는 단시일 내에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사용하다 보면 표면이 조금씩 마모되면서 글자가 흐려지거나 지워질 가능성이 있다. 태운 부분의 촉감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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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색 키캡에 레이저 각인을 할 때에는 각인 부위에 염료를 덧바르기도 한다

표면을 레이저로 까맣게 태우는 방식이라 글자를 원하는 색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간혹 어두운 색 키캡에 레이저로 각인할 때에는 각인 부위에 염료를 바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내구성이 약해 글자가 금방 지워진다.

3) 염료승화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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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료승화 인쇄 방식으로 만든 키캡 / 출처 : SZFYANG

염료승화 인쇄 방식은 레이저 각인 방식의 단점을 보완한다. 키캡에 잉크로 글자를 그린 다음 고열·고압으로 키캡에 잉크가 스며들게 한다. 글자가 잘 안 지워지고 촉감도 일정하다. 원하는 색으로 글자를 새기기도 용이하다. 단, 제조단가는 레이저 각인 방식보다 높다. 잉크가 스며드는 과정에서 글자가 번질 가능성도 있다. 염료승화 인쇄 방식을 적용한 키캡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글자 가장자리가 흐리다.

4) 이중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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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반투명 플라스틱이 글자 부분을 채우며 LED 조명도 투과시킨다

이중사출 방식은 최근 많은 기계식 키보드 키캡에 적용한다. 이색사출이라고도 부른다. 키캡을 만들 때 두 가지 색 플라스틱을 사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키캡을 바깥쪽과 안쪽으로 나누고 서로 다른 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결합하는 방식이다. 껍질과 알맹이를 각각 만든다는 느낌이다. 바깥쪽은 글자 모양대로 구멍을 뚫고, 안쪽은 글자 모양대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두 부분을 결합하면 안쪽 키캡에서 튀어나온 부분이 바깥쪽 구멍을 채운다.

안팎을 다른 색으로 만들면 오래 사용해도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안쪽을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LED 키보드에 장착했을 때 빛이 투과된다. 그래서 LED가 내장된 키보드는 대부분 이중사출 키캡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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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사출 키캡 중에는 O나 R처럼 막힌 모양 글자를 제대로 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단점도 있다. 공정이 복잡해 제조단가가 상승한다. 공정 수준에 따라 폰트 디자인이 제한되기도 한다. 이 경우 O, B, D처럼 완전히 막힌 글자를 제 모양대로 뚫지 못한다. 이런 키보드는 글자 모양이 독특해 사무용 키보드에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 글자 위치와 재질로 지워짐 방지하는 방법도 있어

인쇄 위치나 키캡 재질을 달리해 글자가 지워지는 걸 방지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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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각 방식을 적용한 키캡

글자를 키캡 앞쪽에 인쇄하는 '측각' 방식이 대표적이다. 키캡 앞쪽은 손가락이 닿지 않아 글자가 마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방식은 높이가 높은 키캡에만 적용할 수 있다. 팬터그래프나 노트북 키보드 키캡은 높이가 낮아 적용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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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각으로 문양을 새긴 금속 키캡. 재질 특성상 쉽게 닳지 않는다

금속이나 세라믹으로 키캡을 만들기도 한다. 금속 키캡은 레이저 각인이나 음각으로 글자를 새기며 세라믹 키캡은 글자를 유약으로 그린 다음 구운다. 두 종류 모두 마모에 강해 글자가 잘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적다. 비싸고 무거우며 키감이 일반 키캡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 글자 잘 안 지워지는 키보드 선택하려면?

키보드를 새로 구매할 때, 글자가 잘 안 지워지는 제품을 고르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최근 주로 사용하는 4가지 기법 중 '이중사출'이나 '염료승화 인쇄' 방식을 적용한 제품이 좋다. 레이저 각인이나 실크스크린 방식은 재질에 따라 글자가 닳아 지워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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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터그래프나 노트북 키보드에는 이중사출과 염료 승화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 경우 글자 부분에 투명한 코팅이 붙어있는지 살펴보자. 내마모성 코팅이 적용됐다면 오래 사용해도 글자가 지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LED 조명이 내장된 노트북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키보드 도색이 벗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테크플러스 이병찬 기자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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