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은 드디어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믿어져 온 글쓰기, 그림 그리기, 작곡하기, 나아가 무대에서 연기하기 등 여러 인문학적 영역들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고, 이내 환호했다.
미국 할리우드가 멈춰섰다. 작가와 배우 모두가 참여한 파업으로 미국의 영화·TV 방송 제작이 대부분 중단됐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은 AI로 만든 얼굴·음성으로 배우를 대체하지 않도록 보장을 요구했고 대기업과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영화·TV 제작자연맹은 강력히 반발했다.
제작자연맹은 생성형 AI 사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획기적 제안'이라며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할 것이며 디지털로 복제한 얼굴이나 음성을 사용하거나 변형할 때 배우의 동의를 받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배우조합은 이를 거절했다.
창작자인 예술가와 중개자인 미디어 사이의 첨예한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창작자와 미디어 사이 갈등 문제를 넘어 '모방' 행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었다.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인 노엄 촘스키 교수는 “생성형 AI는 하이테크 표절 기계”라고 깎아내렸다. 생성형 AI를 포함함 모든 AI는 사실 거대한 표절 기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예술행위 자체가 '인간의 모방 행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든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본질적으로 모방이고, 인간은 모방을 통해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인간의 모방 행위'를 모든 예술 활동의 근원적 원리로 보았다. 플라톤이 모방의 부정적 기능을 강조한 것과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시가 역사학보다 더 철학적이고 진지하다고 여겼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들을 서술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시는 삶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법칙과 그 생성 가능성을 모방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들 삶의 보편적 특성에 대한 카타르시스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생성형 AI의 모방은 우리의 삶의 애환과 기쁨의 보편적 특성을 잘 추출하고 모방하고 있을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므로 반복하다 보면 진정한 창조도 가능한 것일까?
아직까지 생성형 AI가 '인상파'나 '초현실주의' 같은 하나의 흐름으로서의 새 장르를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하지만 삶의 '비극'과 '희극'까지는 몰라도 현대인의 매일 반복되는 '개별적 일상'의 보편성 정도는 생성 AI가 잘 추론해주는 듯하다. 예를 들어 쇼핑 사이트에서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아주거나 복잡한 여행 일정을 예약하는 등의 일 말이다.
영혼의 카타르시스적 쾌감까지는 아니어도 반복된 일상의 굴레들을 좀 느슨히 풀어주고, 인간이 만든 복잡한 기계들에 매일 시달려야 하는 일상에서, 우리가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조금 개선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들 말이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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