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총장 임기철)은 이동선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공동으로 웨이퍼 위에 질화갈륨(GaN) 반도체를 성장시킨 뒤 쉽게 떼어내 하나의 웨이퍼로 반도체를 복사하듯 계속 생산할 수 있는 'GaN 원격 에피택시' 기술을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GaN은 흔히 볼 수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제작에 사용하는 반도체 물질이다. 레이저, 트랜지스터 등으로도 이용하며, 최근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질화갈륨 전력반도체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구조는 크게 웨이퍼과 반도체 물질로 이뤄진다. 마치 건물을 세울 때 기초(웨이퍼) 위에 건물(반도체 물질)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고품질의 반도체 물질을 성장시키려면 실리콘, 실리콘카바이드, 사파이어 등으로 만든 웨이퍼가 필수적이다. 반도체 물질은 이 웨이퍼 위에 웨이퍼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물질을 아주 잘 정렬된 형태의 박막으로 성장시키는 '에피택시' 기술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기존 에피택시 기술로는 약 1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반도체물질을 얻기 위해 대략 1000배인 1밀리미터(㎜) 두께의 웨이퍼가 함께 소요됐고 실제 활용되는 반도체 물질만을 떼어내어 사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17년 김지환 MIT 교수가 최초로 제안한 원격 에피택시 기술은 웨이퍼 위에 그래핀처럼 매우 얇은 2차원 물질을 올리고, 그 위에 반도체물질을 성장시키는 독특한 기술이다. 웨이퍼의 특성을 그대로 복사한 박막 형태의 고품질 반도체 물질을 얻을 수 있을뿐 아니라 이를 웨이퍼에서 '박리(떼어냄)'까지 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웨이퍼를 무한히 재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웨이퍼 표면의 전기적 특성이 그래핀 막을 투과하는 것을 이용한 원리로, 반도체 물질이 웨이퍼와 직접적으로 결합하지 않아서 반도체 물질만 박리할 수 있다. 마치 막대자석(웨이퍼) 위에 종이(그래핀 막)를 올리고 쇳가루(반도체 물질)를 뿌리면, 막대자석에 직접 쇳가루가 붙지 않고도 종이를 사이에 두고 양극에 모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특히 LED 디스플레이나 전기차 충전장치에 널리 사용되는 GaN 반도체는 GaN 웨이퍼를 써야 가장 효율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사파이어 웨이퍼보다 약 100배 비싸 결정성이 100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사파이어 웨이퍼를 사용해오던 실정이었다. 이에 값비싼 GaN 웨이퍼를 재사용할 수 있는 원격 에피택시 기술에 큰 기대가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 주로 이용하는 금속 유기화학 기상증착 방식과 같은 고온성장 조건에서 원격 에피택시 기술을 적용할 경우, GaN 웨이퍼 표면이 분해돼 그래핀 막이 손상되기 때문에 적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돼왔다.
연구진은 GaN과 유사한 특성을 갖는 질화알루미늄(AIN) 웨이퍼를 도입함으로써 금속 유기화학 기상증착 방식만으로 GaN 박막을 성장시키고 박리시키는 원격 에피택시 기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로 원격 에피택시 기술을 통해 결정성이 높고 값비싼 GaN 반도체를 산업현장에서 복사하듯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실제로 반도체 생산에 적용될 경우 고품질의 반도체물질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양산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박막 형태로 성장된 반도체만을 떼어내 쓸 수 있으므로 여러 기능의 다양한 반도체를 같은 좁은 공간에 적층형으로 쌓을 수도 있게 됐다.
AIN 표면에 나노 크기의 흠집이 있을 경우 그래핀 막이 손상돼 GaN 반도체를 웨이퍼에서 떼어낼 수 없다는 박리 불가 메커니즘도 규명했다. 종전까지는 원격 에피택시 기술을 모방해 반도체 물질을 '복사'만 하고 '박리' 여부를 밝히지 않은 연구가 종종 있었으나, 이번 연구로 원격 에피택시 기술에서는 '박리' 여부가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점이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했다.
이동선 교수는 “이번 연구성과로 박리까지 가능한 GaN 원격 에피택시 기술을 구현하는 방법과 필수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다”며 “MIT와의 지속적인 연구 교류를 통해 원격 에피택시 기술과 같은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9년부터 MIT 김지환 교수와 공동연구를 지속하며 세계 시장을 선점할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교수가 지도하고 곽희민 박사과정생이 MIT와 공동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나노·소재기술개발 사업과 개인연구사업(중견연구)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재료과학·화학 분야의 저명 국제학술지인 'ACS Nano'에 최근 게재됐다.
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