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피인용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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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GIST 교수

과학자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실험적 관찰과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밝혀낸 연구결과를 학계에서 오랜 기간 인정받고 있는 전문학술지(저널)에 논문형식으로 보고함으로써 학문적·산업적 진일보에 기여하고 있다. 근대과학이 시작된 19세기 말부터 낭만의 20세기까지 과학선진국을 중심으로 추진된 연구개발 과정에서 통찰력 있는 과학적 관찰은 우리의 삶을 바꾸는 소중한 자료가 됐다.

현재 인류는 에너지공급 불균형, 기후변화, 식량 부족, 자원 고갈 등과 같은 심각한 글로벌 이슈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과학기술 연구결과물이 끊임없이 출판·검증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각 연구그룹의 축적돼온 기술적 노하우와 과거 관찰 결과물을 면밀히 파악해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때 관련 있는 기존 문헌을 정확하게 인용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저널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우선 기준은 무엇일까? 여러 글로벌 출판사와 학회 그리고 과학기술 통계 기업이 모두 언급하고 있는 학문·학술 영향력 지수(임팩트 팩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임팩트 팩터는 최근 2년 간의 게재 편수와 피인용 횟수 데이터를 사용한 단순 나누기의 통계로서 과연 올바른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있다. 예를 들어, 동일 연구분야에서도 게재 편수(분모)가 적은 일부 저널은 피인용 횟수(분자)가 상대적으로 조금만 증가하더라도 큰 폭의 임팩트 팩터 상승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이전에 매거진 형태로 출판하던 매체가 급속히 상승된 임팩트 팩터 값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전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성과가 보고되는 저널처럼 포장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안타깝다. 반면 매주 일정 편수의 논문을 꾸준히 출판하는 저널의 경우는 게재 편수 값(분모)이 클 수밖에 없고 절대적인 총 인용 횟수 값은 높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임팩트 팩터의 수치 상승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단순히 임팩트 팩터 랭킹에서 높은 전자가 후자보다 학문적, 산업적으로 파장이 큰 저널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근간이 되는 기초학문을 꾸준히 다뤄온 적지 않은 수의 전통적인 저널이 임팩트 팩터가 낮다고 관심의 밖으로 가야 할 것인가?

현재 많은 출판사가 연구분야의 보다 세밀한 다양성과 확장성은 고려하지 않고 큰 주제를 기반으로 시리즈 형태의 저널명으로 규모를 확장하거나 하나의 이름으로 넓은 범위의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 저널에 ABC를 붙여 여러 갈래로 논문을 출판하고 있다.

인류의 다양한 삶을 위해 차분히 접근해야 하는 연구분야의 저널들은 쇠퇴하고 있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집중적인 투자를 받는 분야의 경우 연구성과의 폭발적 증가에 힘입어 단기간 내에 급격한 성장세를 나타내는 저널도 생기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논문의 인용은 출판사의 신생저널 관리 차원과 주변 동료 과학자를 맹목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음 단계 연구를 위해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지에 따라서만 객관적으로 실행돼야 한다.

과학자는 임팩트 팩터라는 단순한 통계적 수치의 굴레에 묶여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이를 극복하고 가장 적합한 저널에 우수한 연구 논문들을 적극 게재해 보다 보편적인 과학의 발전을 향해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축구에서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듯이, 야구에서 우수한 타자나 투수를 타율과 방어율로만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과학자와 저널도 다양한 시각에서 비롯된 해석을 바탕으로 재평가 돼야 한다.

끝으로 “저널의 영향력은 나누기의 통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피인용 횟수와 출판 편수의 곱하기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독일 앙게반테 케미 저널의 전 편집장인 피터 괼릿츠의 10년 전 글이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재영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jaeyoung@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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