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를 마지막으로 5세대(5G) 통신 중간요금제 출시가 마무리됐다. 비어 있던 110GB 미만의 중간 구간이 촘촘히 메워졌다. 시장에선 소비자 선택폭을 넓혔다는 호평과 생색 내기에 그쳤다는 혹평이 팽팽하다.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정부 정책에 발맞춰 결과물을 내놓은 기업들 노력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중간요금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요금제 세분화를 넘어 알뜰폰의 5G 도매 대가 인하와 저가요금제 출시, 최적요금 고지 의무화 논의가 줄줄이 남아 있다.
시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통사의 팔을 비틀어서 생색내는 것 아니냐는 항변도 들린다. 요금제를 둘러싼 일련의 행보는 이통사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요금제 구간 확대를 원하는 소비자 요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이통업체들은 수년간 요지부동이었다. 데이터 실사용량을 고려하지 않는 양극화된 요금 체계는 불필요한 통신비 지출로 이어졌다. 5G 품질을 둘러싼 불만도 애써 외면했다.
정부가 기업 상대의 요금인하 압박을 이어 온 것도 지금의 통신요금 체계가 기형적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5G 가입자 비중이 절반에 이를 때까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데이터 구간에 맞는 요금제가 없었다는 점에서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건 이번 중간요금제 도입이 5G 가입자 저변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세분화된 요금제는 롱텀에벌루션(LTE) 고객을 5G 요금제로 끌어들이는 통로 역할을 할 것이다. 더 많은 고객이 5G를 이용하게 됨에 따라 품질 개선을 위한 투자는 필요하다. 이통사는 2019년 5G 상용화 이후 설비투자에 소극적이었다. 품질 논란은 여전한데 5G 고도화를 위한 투자는 제자리걸음이다. 차세대 이통인 6G를 향한 글로벌 경쟁에서도 미국·중국에 뒤처졌다는 위기감만 감돈다.
사실 통신비 인하라는 목표만 놓고 보면 정부는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최근 만난 정부 관료는 “정책 달성을 위해서는 통신 기본요금 자체를 내리는 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지만 그럴 순 없다”고 했다. 투자를 위한 씨앗은 남겨 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회선당 5000원만 낮춰도 통신비 인하 효과는 확실하더라도 이통 3사의 연간 영업이익과 맞먹는 3조원의 돈이 사라진다. 이 돈은 통신 산업 미래 자양분을 마련하는 데 써야 한다.
올 상반기가 통신사에 반성 시간이었다면 남은 하반기는 진흥 시간이 돼야 한다. 정부도 부가통신사업자와 불평등 규제 해소를 비롯해 투자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진흥 관점의 정책을 짜야 한다. 기업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탈통신뿐만 아니라 통신 영역에서도 품질 개선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로 쌓아올린 통신 강국이라는 금자탑을 미래에도 이어서 쌓을 수 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