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D, 디스플레이 초격차 투자 의미는
8.6세대로 경쟁사와 격차 더 확대
애플 차기 신제품 겨냥 선제 투자
LCD서 OLED로 시장 판도 전환
공정 등 추가…소부장 수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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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의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는 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처음 이뤄지는 것이다. 그동안 OLED는 6세대(리얼 RGB 기준)가 최대였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디스플레이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가 첫 8.6세대 투자 테이프를 끊은 건, 경쟁사들과 격차를 벌릴 기회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세대는 크기다. 4세대, 5세대, 6세대 등 숫자가 높아질수록 유리기판(원장) 크기가 커지고 더 큰 디스플레이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 시장 1위다. 중국의 가세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하면서 OLED를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를 LCD에서 OLED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중소형 OLED 시장 점유율은 50%를 훌쩍 넘는다. 특히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OLED 패널은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식하고 있다.

삼성은 이번 8.6세대 투자를 통해 OLED 시장을 확대하고 영향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침투로 중소형 OLED 시장을 창출했던 것처럼, 이제는 노트북·모니터와 같은 전통의 IT 제품까지 OLED를 확산시켜 궁극적으로는 디스플레이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다.

적(R)·녹(G)·청(B) 삼원색을 모두 사용하면서 OLED 패널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장 앞서 있다. 단적인 예로 애플 아이폰용 OLED의 약 70%를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하고 있다.

지금도 경쟁사보다 앞선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장 먼저 8.6세대를 가동하겠다는 건 그만큼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것으로,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초격차'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 여력이 부족한 경쟁사와 달리 삼성은 자금이 충분한 상황”이라며 “이때를 시장 선도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삼성은 과거에도 남보다 한발 앞서면서, 과감한 투자로 승기를 잡았다. 40인치 대형 LCD TV 시장이 열릴 것으로 확신했던 삼성은 2003년 8월 경쟁사와 달리 6세대를 건너뛰고 바로 7세대 LCD 투자를 결정했다. 그 결과 전체 LCD 시장과 달리 고전하던 TV용 LCD 시장에서 2005년 20%를 기록하며 샤프(18%)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2008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2005년에는 수요처도 없는 상황에서 4700억원을 투자해 1만3800평 규모의 OLED 전용라인, A1(4.5세대) 라인을 만든 삼성은 이후 2007년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며 세계 최초로 OLED 양산에 성공했다. 이후 10조원이 넘은 투자로 6세대 플렉시블 OLED 라인(A3)을 구축한 삼성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LCD에서 OLED로 바꿔놨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제 8.6세대 IT용 OLED 투자를 통해 LCD가 주력인 태블릿, 노트북 시장의 중심 기술을 OLED로 빠르게 전환, 중국으로 넘어간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국 지위를 탈환한다는 전략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신규 라인이 완성되는 2026년이면 IT용 OLED를 연간 1000만대 정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IT용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20% 수준으로 지금보다 5배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OLED 시장 커진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투자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전망이다. 한국 디스플레이의 세계 1위 주도 외에도 LCD 퇴출을 앞당기고, OLED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시장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IT기기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 비중이 지난해 3.9%에서 2027년 23.6%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 업체 DSCC에 따르면 2026년 노트북을 포함한 IT용 OLED 시장 규모는 36억달러(약 4조71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 시장을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가 주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애플도 아이패드, 맥북에 LCD 대신 OLED를 적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2024년 첫 출시를 목표로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 아이패드용 OLED 2종과 맥북용 OLED 2종 패널 개발을 주문했다.

이번 삼성디스플레이 투자는 애플 차기 신제품을 염두에 둔 투자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6세대 라인을 개조해 아이패드를 우선 생산할 계획이다. 이후 8.6세대 라인에서 맥북 등을 생산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아이패드는 태블릿, 맥북은 노트북이다. 아이패드는 연간 7000만대가량이 판매되는 전 세계 태블릿PC 1위 제품이다. 애플이 테블릿, PC, 모니터 등 IT 기기에 OLED로 전환하기 시작하면 글로벌 경쟁업계에서도 OLED 채택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부장 '수혜' 기대감 ↑

삼성디스플레이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관련 소재·부품·장비 업계 영향도 예상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개발하는 IT용 OLED에는 식각 공정이 추가됐다. 식각은 유리 기판을 매우 얇게 만드는 과정이다. 스마트폰보다 화면 크기가 큰 IT기기의 휴대성을 위해 기기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공정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식각 공정을 켐트로닉스에 맡겼다. 켐트로닉스는 지난 2월 OLED 식각 시설 관련 투자 계획을 밝혔다.

OLED 소재 업계도 수혜가 예상된다. 디스플레이가 커지면 OLED에 사용되는 소재나 부품 양이 늘어난다. 삼성디스플레이에는 삼성SDI, 에스에프씨, 덕산네오룩스 등이 OLED 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0억달러(2조2100억원) 규모였던 OLED 재료 시장은 연평균 21%씩 성장해 2026년 30억달러(3조92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