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13〉디지털시대, 리더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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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이순신 장군은 도주하는 왜적을 노량에서 막아 크게 무찔렀다. 그의 전략은 국토를 유린한 왜적을 벌하고 재침략을 막는 것이었다. 왜란 당시 주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들로 이뤄진 일본 간사이 지역 다이묘들이었다. 간토 지역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왜란에 참전하지 않아 병력을 보전했고, 도요토미 잔존 세력을 쉽게 제거하고 일본을 제패했다. 조선과는 약 26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이순신 장군이 왜군 주력을 쫓지 않고 대부분 살려 보냈다면 어땠을까. 그 결과 세력을 유지한 도요토미 잔존 세력이 도쿠가와 세력과 비등하게 싸웠다면 일본은 오랫동안 내전에 시달려 스스로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또 하나. 남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배신자와 영웅'이야기다. 1824년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배신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일랜드 대장 퍼거스 킬패트릭은 부하들의 요구에 따라 배신자 색출과 제거를 명령했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배신자는 바로 킬패트릭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아일랜드 민중이 알면 독립을 위한 반란은 실패가 명백했다. 반란군은 킬패트릭의 결단을 받아들여 그가 영국에 의해 암살되는 것으로 꾸몄다. 그 결과 아일랜드 민중의 분노는 독립의 기폭제가 되었고, 킬패트릭은 영웅으로 역사에 남았다. 리더는 결단에 따라 배신자가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는 싸우지 않았다. 첨단 무기로 총포를 도입했고, 사격 전술을 바꿨다. 막다른 상황에서만 승부를 걸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맞아 5분의 1에 불과한 세력으로 정보전, 기습전을 펼친 끝에 이겼다. 이에 반해 명나라 숭정제는 후금이 침입할 때 간신의 말을 듣고 충신 원숭환을 죽이는 잘못된 결단으로 나라를 망쳤다.

초한지의 항우는 자존심 때문에 재기의 기회를 포기하고 유방군의 병사들에게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결단은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달리 결단했다면 다른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을까.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두 갈래 길 가운데 누구도 가지 않은 험한 길을 갔기 때문에 성공을 이룬 것처럼 적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리더의 판단은 쉽지 않고, 결단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디지털 시대는 투명하다. 결단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전파된다. 매 순간 언론·노조·시민의 감시와 정적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반대 세력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감시와 견제가 많은 탓에 양보·절충·사과를 통한 협상은 쉽지 않다. 인적 오류를 피하기 위해 결단 과정을 과학기술, 정보통신, 데이터, 인공지능(AI)에 의존한다.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하다 보니 따라 하는 경로의존성에 의한 결단이 많다. 법령에 정해진 절차를 하나라도 거치지 않으면 결단을 실행할 수 없다. 디지털은 미래를 위한 결단을 창의적 아이디어보다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결단은 그만큼 어렵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무겁다.

디지털 시대, 진정한 리더를 찾기 어렵다. 1년, 3년 등 단기 기준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소홀할 수 있다. 단기 실적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안기는 결단을 할 위험성도 있다. 투명성·공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재량에 따른 신속하고 창의적인 결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결단 결과만 아니라 과정도 꼼꼼하게 평가받는다. 결단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어서 책임을 회피한다. 리더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2002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실력이 의심됐지만 국민이 그 결단을 존중하고 기다렸기 때문에 4강 신화를 보았다. 구성원은 리더의 창의와 결단을 존중하고, 리더는 결과에 책임져야 디지털 시대가 산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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