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공정 웨이퍼 투입량 5% 이상 확장 못해
양사 메모리 생산량 40%…경쟁력 약화 불가피
소부장 업계도 영향권…탈 중국 가속화 목소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이 범용(레거시) 팹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촘촘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양사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최대 4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거점이다. 장기적으로 '탈 중국'이 불가피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도체 생산 거점의 대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반도체법에서 규정한 보조금(투자 지원금)이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쓰이지 않도록 설정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조항을 공개했다. 첨단 반도체의 경우 생산 능력을 5%, 성숙 공정을 사용한 반도체는 10% 이상 확장하지 못하는 게 골자다.
여기서 '확장'은 반도체 웨이퍼 투입의 양적 증가를 뜻한다. 해당 상한선을 넘으면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미국 보조금이 중국에 간접적 수혜로 작용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은 기술·공정 고도화(업그레이드)를 위한 투자는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두고 “기술 업그레이드 시 집적도 증가로 웨이퍼당 칩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서 “기업 전략에 따라 추가 생산 확대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 숨통은 트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의 또 다른 규제 때문에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의 기술과 공정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첨단 장비 도입은 필수다. 장비가 없으면 기술 및 공정을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10나노급 후반(1y·1z) D램을 생산하지만 10나노급 초반(1a)으로 전환하는 것부터 사실상 불가능하다. 1a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에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부터 EUV 노광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수출 규제 당시 1년 유예를 받았다. 그러나 올 10월 이후에도 유예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최악으로는 반도체 생산량 확대와 기술 고도화 모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짙다. 이 경우 중국 공장은 범용 제품을 위한 팹이나 성숙 공정, 레거시만을 위한 생산 거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전체 낸드 플래시 가운데 40%,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낸드를 각각 40% 및 20% 생산하고 있다. 생산 비중이 상당한 만큼 중국에서의 생산 확대 제한 시 치열한 메모리 생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양쯔메모리(YMTC), 창신메모리(CXMT) 등 중국 기업이 정부를 등에 업고 맹추격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첨단 반도체로 분류되는 192단 낸드와 17나노 D램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장기적으로 '탈 중국'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대중국 제재에 나설 경우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을 중국 이외 지역에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첨단 반도체의 경우 국내(한국) 등으로 생산 무게 중심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도 이번 가드레일 영향권에 들어왔다. 핵심 고객사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설비 확대가 제한되면 수요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경기 침체로 국내 투자마저 축소된 상황에서 '이중고'는 불가피하다. 한 국내 반도체 장비사 대표는 “한동안 국내 반도체 제조사의 중국 공장 수요가 늘어 중국 매출 비중이 커졌다”면서 “미-중 갈등으로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매출 관련 대안을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