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시장 주도권을 놓고 신작 경쟁의 막이 올랐다. 첫 타자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가 만든 '아키에이지 워'다. 송 대표는 초창기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을 맡아 200만명에 이르는 사전 계약을 달성한 데 이어 안정적인 서비스 출시를 이뤄냈다.
'아키에이지 워'는 고퀄리티 그래픽, 대규모 전투 콘텐츠, 해상전을 전면에 내세웠다. 수많은 이용자가 서비스 오픈과 동시에 접속했지만 끊김 없이 쾌적한 플레이를 지원하는 서버 환경 또한 돋보였다. 출시 당일 5시간 만에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아쉬운 점은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가 모험이 아닌 안정을 택한 것이다. 여러 차별화 요소를 내세웠지만 '리니지 라이크'라는 꼬리표를 떼지는 못했다. 야심 차게 출시한 2023년 대형 신작임에도 사용자환경(UI), 육성 요소 등은 몇 년 전에 출시된 타사 모바일 기반 MMORPG와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유사했다. 막대한 수익이 창출되는 기존 MMORPG 이용자층 수요를 흡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MMORPG 장르는 국내 게임산업 성장에 핵심 역할을 했다. 동시에 과도한 경쟁 유도와 수익모델로 말미암은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자가복제 수준의 유사 게임 범람으로 게임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성이 저해됐다. 아이템 하나를 얻기 위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돈이 들어가는 극악한 수준의 확률형 아이템은 결국 법적 규제가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올해도 '아키에이지 워'를 시작으로 넥슨 '프라시아 전기'와 위메이드 '나이트 크로우', 6월 예정의 엔씨소프트 '쓰론앤리버티'(TL)와 컴투스 '제노니아' 등 MMORPG 신작이 줄줄이 출시된다. 획일화한 MMORPG 장르에 대한 사회적 피로도와 비판 여론이 거세진 만큼 이들 신작에 전과는 다른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이용자가 많다. 이와 함께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명문화한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도 본격 시행까지 불과 1년 남았다.
물론 게임사가 기업으로서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품을 내놓는 행위가 단순히 매도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폐해는 결국 국내 게임산업 전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게임사 스스로도 변화를 약속하며 콘솔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K-MMORPG 산업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출시될 신작뿐만 아니라 기존 게임도 제대로 된 업데이트를 통해 얼마든지 '갓겜'으로 변모할 수 있다. 국내 게임사의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꾸준한 콘텐츠 업데이트 역량과 서버 운영 노하우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게임사가 가장 잘하는 장르에서 글로벌 이용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