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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_변호사

플라톤은 이데아,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나라를 말했다. 현실은 이데아 또는 신을 찾기 위한 허상에 불과했다. 이성과 과학으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허용되지 않았다. 성찰, 믿음, 기도로 이데아 또는 신에게 가야 했다. 근대 이후 이데아 또는 신의 절대적인 지위가 흔들리며 대중 불안 심리가 높아졌다. 세속적인 군사·상업 권력이 어지럽게 난립하고, 그 틈을 타 사이비 종교와 범죄가 늘었다. 이데아, 절대자 등 의지할 곳을 잃은 인간은 잠시 방황했지만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현실을 가꾸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믿을 것은 이성과 과학이었다. 자본주의 경제와 결합해 현실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활동이 늘어났다. 이성과 과학의 성공은 '다양성'에서 나왔다.

다양성은 무엇인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모양·빛깔·형태·양식·의견 등이 제각각 다른 것이다. 다양성에도 한계가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만을 데이터베이스로 하는 노래방이 있다고 하자. 그동안 그런 노래방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성을 띤다. 그러나 그 노래방에선 BTS 노래만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다양성이 없다.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노래방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조직의 목표 등 보편·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귀속한다. 언젠가 기업들이 '생각을 달리하라'(Think different)고 모든 임직원에게 요구하고 미디어 광고매체를 휩쓴 적이 있었다. 이것은 기업의 매출 성과를 높인다는 하나의 목표에만 귀결한다. 고객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다양성은 폐기된다.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없던 유행을 만든다. 그러나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은 획일적·통일적 상황을 만든다. 다양하지만 다양하지 않다. 노래방에서 누군가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가 옆에 서서 BTS 노래를 부른다면 다양성일까? 아니다.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죽이고 차이를 없애는 것이니 가짜 다양성이다. 회의에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가운데 그 말을 끊고 자기 주장을 한다면 어떤가. 그것도 다양성을 죽이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그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어떤가. 이건 다양성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지지하는 발언만 한다면 다양성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는 획일성이 중요했다. 역량 약한 국민이 정부가 정한 목적과 방향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화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다양성이 중요했다.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선 목표 설정과 실행 전 분야에서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역량이 높아진 국민이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통해 다양한 지식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과 산업이 나온다. 부작용으로 과열 경쟁을 낳기도 했다.

디지털시대엔 다양성도 달라야 한다. 다양성이 누군가 정해 둔 보편·절대적인 어느 하나의 목적에 봉사하는 것을 넘어서야 그 조직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조직을 바꿀 수 없다면 그곳을 빠져나와 다양한 형태·강도·규모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디어가 디지털 미래를 만든다. 과거 우리는 1개 회사에서 평생을 일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러 회사를 위해 일할 수 있고, 그 가운데 내가 직접 운영하는 회사나 일도 있을 수 있다. 낮에 하는 일과 밤에 하는 일이 달라도 된다. 낮엔 멀끔한 회사원이지만 밤엔 프로게이머일 수 있다. 오프라인만이 아니라 온라인, 모바일, 가상공간 메타버스에서 여러 인격(캐릭터)으로 일할 수 있다. 1개의 인간 개체가 다양체가 되어 뻗어나간다. 반대로 서로 다른 것들을 묶어서 하나처럼 작동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각자의 '차이'를 지키고 키워야 한다. 이것이 디지털시대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고, 공존을 위한 다양성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