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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특허청장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열풍이 전 세계에 불고 있다.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 충격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챗GPT는 AI가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왔음을 보여 준다.

챗GPT를 이용해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입력해 봤다. 챗GPT는 대학·연구기관 등 혁신을 장려하는 지원 생태계 조성, 사업화 위한 자본 접근성 제고, 기업의 혁신 기술 보호 및 투자 회수를 위한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 등을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의 핵심 요인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답변은 루이스 브랜스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경영이론 등을 학습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핵심 요인은 기업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사업화하며 겪게 되는 '악마의 강'(Devil's River),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 등 세 가지 장벽을 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모두 지식재산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첫 번째 장벽인 '악마의 강'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혁신 기술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뜻한다.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사상 최초로 30조원를 돌파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입 비율은 세계 2위에 이른다. 그러나 기업 혁신을 지원하는 우리 대학·공공연구기관의 특허기술 이전율은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악마의 강'을 건너지 못해 투자에 비해 경제적 성과는 낮은 R&D 패러독스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특허청이 보유하고 있는 5억3000만여건에 이르는 특허 빅데이터의 분석을 R&D 전 과정으로 확대해서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 분야를 집중 지원하고, AI를 통한 실시간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허 빅데이터는 기업이 스스로 신청하고 비용을 치러서 만들어 낸 시장지향적 기술정보의 보고다. 이를 분석하면 주요 국가와 기업의 기술개발 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특허기술로 선점된 영역과 공백 영역 또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특허 빅데이터를 R&D 나침반으로 삼아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시장 수요와 연계된 R&D 전략을 수립, 사업화가 가능한 혁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죽음의 계곡'은 혁신 기술의 사업화 단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벽을 의미한다. 기술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제품화하기 위해 상당한 자금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스타트업은 보통 창업 3년에서 7년 차에 '죽음의 계곡'을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 스타트업의 5년 차 생존율은 33.8%로 미국 51.6%, 유럽국가(EU) 46.1%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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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제연구소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최초 특허출원이 등록된 스타트업은 등록되지 않은 스타트업에 비해 특허등록 3년 후 벤처캐피털로부터 펀딩은 1.5배, 지식재산 담보대출은 1.9배, 기업공개(IPO) 시장에서의 투자 성공은 2.3배 각각 증가해 5.3%의 높은 생존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특허등록 5년 후에는 고용과 매출액 증가율도 각각 4.1배, 2.9배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 결과는 특허 등 지식재산이 기술혁신형 스타트업의 자본 접근성을 높여서 기술 사업화와 성장 촉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술 혁신의 핵심 주체인 스타트업이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기술금융(326조원)의 2.3% 수준에 불과한 지식재산 금융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식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AI 기반 정량평가와 전문가의 정성평가를 접목한 지식재산 가치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기초로 지식재산 가치평가를 기술시장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윈의 바다'는 사업을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해 타 업체와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는 시장개척 단계에서 부딪치는 장벽이다. 기업이 혁신제품을 출시하더라도 기술 유출, 아이디어 탈취, 제품 모방 등 무임승차 행위에 의해 사업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중소기업은 존폐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중소기업의 국내외 기술 유출 피해는 최근 5년 동안(2017~2021년) 280건, 약 2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경제 전환에 따른 글로벌 온라인 유통 증가와 한류 확산으로 말미암은 K-브랜드 위조 상품 피해는 약 2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침해행위로부터 우리 기술과 브랜드를 지식재산으로 국내외에서 강력히 보호할 때 혁신기업이 차별화한 경쟁력을 기초로 시장개척에 성공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우리 중소기업에 지식재산 보호 전략과 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지원해서 기술 보호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피해기업이 침해자로부터 침해 증거를 용이하게 입수할 수 있도록 증거수집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식재산 침해의 온라인화와 지능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사와 조사 역량을 강화하고, 인력 확대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베트남·인도 등 침해 위험성이 높고 시장 중요성이 큰 지역 중심으로 특허관 파견을 확대해 우리 수출기업의 지식재산을 현지에서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대한 위조 상품 모니터링에 AI를 활용, K-브랜드 보호를 효율화함으로 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동·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등 전략시장에 한국형 지식재산 행정 시스템 수출을 확대, 우리 기업이 국내와 유사한 제도로 지식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지식재산은 기술개발 단계에서 R&D의 길잡이, 사업화 단계에서는 자금조달 원천, 시장개척 단계에서는 신사업의 두터운 보호막으로 각각 작용해서 경제 핵심 주체인 기업의 기술혁신과 성장을 촉진한다. 앞으로 이러한 지식재산 역할을 더욱 강화해서 미래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혁신기업을 육성,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국가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이인실 특허청장

〈필자〉이인실 특허청장은 1985년 변리사시험에 합격해 38년 동안 지식재산 전문가로 활동했다. 지난해 5월 민간 출신 최초로 특허청장에 임명됐다. 부산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와 미국 워싱턴대에서 법학석사,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국제변리사연맹 한국협회 회장,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지식재산포럼 회장,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식재산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매니징IP로부터 '2022년 지식재산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