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정쟁에 발목잡힌 반도체 패권

“후, 2월은 물 건너갔죠.”

최근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법'이라는 말을 꺼내자 깊은 탄식부터 내뱉었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 관련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 여야 충돌 탓에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쳇말로 갈 길이 구만리인데 집안싸움 때문에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본회의에서 6%(대기업 기준)인 세액공제 요율을 8%로 확대하는 조특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여야는 10% 이상을 제시했지만 정부가 국가 재정 상황을 참작해 8%로 결정했다.

그러나 업계 중심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미국 등 주요 경쟁국이 잇달아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에서 두 자릿수로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반도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율공제율을 최고 25%로 상향한 2차 개정안을 국회에 재상정했다. 그러나 그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과 관련해 심화한 여야 대립과 행정부를 향한 '괘씸죄'가 국회 통과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야 모두 국익을 위한 반도체 산업 육성과 조특법 2차 개정안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조특법 개정안과 관련한 몇 차례 이견 조율 과정에서 국회를 무시했다고 보는 의원들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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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각국은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거침없는 행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 설비투자 비용의 25%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이른바 '반도체법'을 시행했다. 대만은 설비투자에 5%, R&D에 25%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일본도 오는 4월부터 R&D 비용에 최대 12%의 공제율을 적용한다.

조특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시점이 늦어질수록 글로벌 반도체 산업·기업들이 평가하는 한국의 입지 매력도는 낮아진다. 일정 비용을 기준으로 한국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국가를 새로운 반도체 거점으로 선택할 것은 자명하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 반도체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2인 3각' 경기를 하고 있다. 공동의 목표인 '국익'을 향해 발을 맞춰 달리지 않으면 선두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 조특법 개정안을 놓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경쟁국들이 우리를 앞지르는 것은 시간 문제다. 국회가 초당적으로 반도체 지원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를 촉구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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