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 다녀온 사람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묻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열에 일곱은 이 제품을 꼽았다. 올해 전시장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크게 남은 제품은 자동차나 TV, 로봇이 아니다.
다름 아닌 농기계 업체 존디어의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다. 이 트랙터는 인공지능(AI) 기술로 농부가 간단히 스마트폰만 조작하면 밭을 갈고 씨나 비료를 뿌리거나 제초제를 뿌리는 일을 스스로 해낸다.
자율주행 기술이 가장 쓸모있게 쓰일 최적의 제품을 찾은 최고의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는 상용화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도심 한복판에서 완전 자율주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나 차량이 없는 대형 농장에선 자율주행이 빨리 도입될 수 있다. 당장 상용화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존디어의 자율주행 트랙터는 '생각의 전환'이 기술혁신과 인류의 걱정거리인 식량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사례라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농기계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의미로 존디어는 '농슬라'라는 별명도 있다.
'농슬라의 교훈'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기술을 최적의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하는 능력도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농기계에 AI를 탑재한 과감한 도전도 의미가 크다. 농기계를 팔아온 존디어는 이번 개발로 소위 '대박'을 치고 있다.
요즘 전자 산업 기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문구가 'IT 전방산업 침체'다. 여기서 칭하는 IT 전방산업은 TV, 가전, 스마트폰 등 소비재를 주로 말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재고는 쌓이고 연쇄적으로 소재, 부품, 장비업계 등 후방생태계까지 악영향을 받고 있다. 기업에선 비용 절감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고 투자 지갑도 꽉 닫은 상황이다.
'혁신'에 정답이 있다. 정체된 시장에 매몰돼 상상의 폭을 좁히면 성장은커녕 현상 유지마저 어렵다. 어려울수록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도전적 시도와 혁신에 대한 투자와 사고전환이 중요하다. 밭 가는 농기계에 비싼 AI를 탑재했던 아이디어와 과감한 투자, 전략적 판단이 기업의 명운을 가른 핵심 요소가 됐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도 경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의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 저궤도 위성, 우주, 로봇, 해운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늘 혁신의 기회가 존재한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농슬라'처럼 세계인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혁신 사례와 기업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