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노령(old age)에 MG2A라는 질병코드를 부여했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들이 노령을 질병으로 진단하면 적용 대상 선정 등에서 부적절하게 사용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부터 시행되는 국제질병분류 개정판(ICD-11)에는 노령이라는 단어 또는 노령이 질병임을 암시하는 표현은 실리지 않았다.
'생물학적 과정인 노화가 질병인가는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격렬하다. 그러나 논란과는 상관없이 노화 관련 연구는 더 활발해지고, 투자자들 사이에선 노화를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커지고 있다.
노화를 1년 늦추면 경제적으로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2021년 네이처 에이징 저널에 이러한 궁금증 풀기 위해 노화 연구 전문가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경제학자 앤드루 J. 스콧, 마틴 엘리슨이 노화 방지에 의한 건강수명 연장 가치를 평가한 내용이 실렸다.
그들은 현재 미국 경제, 건강, 인구통계 데이터에 맞게 보정된 통계적 생명 가치 모델을 사용해 기대수명이 1년 연장되면 38조달러(5.38경원), 10년이면 367조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분석으로 '노화는 질병'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노화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은 세계적인 고령화 문제와 함께 노화의 과정을 이해하고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노화 생물학자들은 크게 네 가지 정도 노화 치료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혈액 속 회춘 인자나 노화 촉진인자에 기반한 치료제 △식이 제한에 의한 항노화 효능을 가진 약물 △노화를 촉진하는 노화 세포 제거 약물 △노화된 줄기세포의 후성 유전학적 리모델링을 통한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기술 등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9년 다양한 모델 동물에서 수명연장 효능이 입증된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민'에 대해 최초로 항노화 임상을 승인했다. 임상시험에서 처음으로 노화가 치료 대상이라는 게 반영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항노화 시장의 급속한 확대가 예상된다. 구글, 아마존 등 민간 기업은 노화 치료를 위해 천문학 규모의 투자를 하면서 항노화 시장을 선점하려 경쟁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노화 치료 효능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앞서 소개한 임상시험에서는 보행속도나 인지능력 등 다양한 신체 변화에 대한 임상 지표를 추적 관찰하고 있다. 신체 변화에 대한 임상 데이터는 비교적 정확하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나이와 같은 수치로 나타내는 데 한계가 있다.
노화 치료 임상시험에서 중요한 지표는 생물학적 나이이다. 생물학적 나이는 연대기적 나이보다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다. 2013년 유전학자인 스티브 호바스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DNA를 변화시키는 DNA 메틸화를 분석해 후성유전학적 생체 시계(epigenetic clock)를 개발했고 현재는 다양한 마커와 딥러닝 기술이 융합해 정확도가 계속 향상되고 있다. 생물학적 나이의 정확한 측정은 노화 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것이다.
노화도 질병이라는 인식의 전환에 맞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2008년 우리나라 최초로 노화 전문연구 조직인 노화연구센터를 시작으로 2022년 노화치료융합연구단을 출범했다. 노화치료융합연구단은 고령인구의 건강수명 연장과 노년 삶의 질 저하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등록상 나이가 아닌 생물학적 나이를 정확히 진단하고, 노화를 지연하고 치료할 수 있는 노화 대응 전주기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다.
노화융합연구단의 성공적인 연구수행으로 우리나라가 항노화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국민의 건강수명을 연장과 나아가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길 기대한다.
양용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융합연구단 선임연구원 dearyang@kribb.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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