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47)디지털시대의 행동준칙,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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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 도덕의 의미, 법칙과 실행방안은 무엇일까. 디지털시대 윤리 문제다. 루치아노 플로리디의 '정보윤리'는 생소하긴 하다. 정보라는 속성이 있을 수 있다면 생명·실체가 없는 것까지도 정보 주체로서 윤리적 가치가 있을 수 있고,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인공지능(AI) 윤리의 논의는 EU AI법안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인간에게 얼마나 크고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규제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논의는 AI를 이용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과 반대로 인간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생각의 이분법적 대립에 빠지기 쉽다. 인간은 동식물 등 생명체, 자연환경과 비인간의 존재를 철저히 통제·이용하면서 인간의 생명·신체·재산의 안전을 도모해 왔다. 인간 중심의 특권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데이터·정보 속성을 기준으로 보면 모두 동등한 정보 주체가 될 수 있고, 차별없이 윤리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동식물이나 기계·AI를 비롯한 타자와 접속해서 그 관계 속에 존재한다. 특히 디지털시대의 특성을 보면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 모두가 정보세계의 구성원이다. 데이터·정보로서 존재하고, 접속 등 상호작용을 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무조건 분리, 대립하는 구조로 봐선 안 된다. 접속과 일탈, 결합과 분해 등 상호작용과 함께 그 관계 속에서 살펴야 한다. 인간만을 선으로 보고 다른 것을 악으로 간주하거나 인간만을 정보 주체로 봐도 안 된다. 그런 시각은 인간이 비인간 존재의 이용·통제·지배를 정당화하게 된다. 디지털시대 융·복합 관계를 정확히 드러내지도 못한다. 동식물 생태계와 자연의 파괴를 허용할 뿐이다.

디지털 윤리가 중요하다. 컴퓨터는 피싱 범죄자 앞에 있을 때는 범죄 도구가 되지만 학교 교사와 학생 앞에 있다면 훌륭한 교육 도구가 된다. 교육이 디지털기기를 다루는 실용기술 교육에 그쳐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적법하게 정보를 생산·재생산·유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교육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기르고 디지털시대 윤리를 정립해야 한다. AI 등 다른 존재와 연결, 접속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이해·배려하고 재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개체를 초월해서 다른 개체와 공존하고, 인간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조율 기능을 해야 한다.

과거엔 실재와 가상 경계가 명확했다. 지금은 경계가 흐려지고 구분이 쉽지 않다. 생체·지문으로 로그인하고, 자동 로그인도 된다. 질환이 생기면 우리 몸도 상당 부분 인공 의료기기로 채워진다. 항상 접속 상태를 유지해야 살 수 있다. 기계, AI 등 비인간 존재를 도구로 보는 관점은 버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정보세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담당하는 동등한 주체로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과 합일된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노·장자의 철학과도 통한다. 인간이 비인간 존재와 물리적·화학적 관계로 접속돼 있다면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도구에 불과한 도끼는 버릴 수 있지만 내 몸을 구성하는 손과 팔을 버릴 수 없듯이 심장에 박힌 스텐트, 인공뼈 같은 것도 버릴 수 없다.

그렇다고 AI 등 비인간 존재를 무조건 인간처럼 대우하는 것이 디지털시대 윤리는 아니다. AI 등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이 중요하고 공존의 방법은 다양하다. 야생의 개와 가족으로 지내는 개를 똑같이 볼 수 없다. 그들 관점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과 발전 수준을 살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을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으로 올리면 공존은 불가능하다. 인간을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두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시대 윤리의 첫걸음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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