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국가 안보의 비밀병기 EMP 측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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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자파표준그룹 책임연구원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국군은 일본군 주력 전투기 '제로센'의 기동력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군의 고성능 레이더로 적을 빨리 포착할 수 있었고, 높은 상공에 숨어 있던 미국 전투기가 제로센을 포착해서 격추했다. 전자 수단을 사용하는 군사 활동, 즉 전자전(Electronic Warfare)의 시작이다. 이후 전자전은 빠르게 발전했다. 전자 장비 기능도 감청과 교신 등 정보활동부터 적군의 전자전 장비 사용을 방해하는 공격용, 반대로 아군의 첨단무기를 지키는 방호용 등으로 세분됐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지난 8월 대만 방문 때 중국군이 최신 구축함과 전투기를 동원해 펠로시 의장이 탑승한 비행기를 추적해서 감시하려 했지만 미국 군용기의 전파 방해 때문에 중국 장비가 모두 먹통이 됨으로써 실패했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자전의 범위는 지상·해상·공중뿐만 아니라 사이버와 우주 공간으로까지 확대됐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한 공격용 로봇과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된 드론 편대, 24시간 무인 감시체계처럼 신기술로 무장한 지능형 무기까지 속속 전력화되면서 전투 현장 모습은 물론 전쟁 개념까지 바꾸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현대전의 가장 큰 위협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의도적으로 발생시키는 '고출력 전자파'다. 대표하는 무기가 EMP(Electromagnetic Pulse)다. EMP탄은 전자파 펄스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전자 방출 효과를 이용해서 폭발 반경 내 모든 전자기기를 교란 또는 파괴한다. 현대 첨단 지휘체계와 군사 장비 대부분이 반도체 및 전자부품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소총, 도검류 등 재래식 무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순간에 모든 전력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고출력 전자파를 이용한 공격 대상은 비단 군부대뿐만이 아니다. 전력망과 통신망, 원자력발전소와 산업단지 등 국가 기간시설을 마비시켜서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으려는 시도 역시 가능성이 매우 짙은 시나리오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의 EMP탄 개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 EMP를 탐지 및 차폐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독일, 일본,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고출력 전자파 공격에 대한 방호대책과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고 수준의 군사기밀인 까닭에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관련 정보를 얻거나 기술 기준을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5G플러스팀은 최근 수년간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EMP 방호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기존의 고출력 전자파 측정 시스템은 눈 깜짝할 사이보다 100만배나 빠른 나노초 수준의 초고출력 전자파를 측정하는 데 주로 금속 센서를 사용한다. 하지만 측정하고자 하는 신호원에 센서가 가까이 다가가면 불필요한 잡음이 발생, 초정밀 측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5G플러스팀은 금속 성분을 최소로 사용하는 광-전자파 융합 기술 기반 100기가헤르츠(㎓)급 초고속 펄스 파형 측정표준 연구데이터, 5세대(5G) 통신 기지국용 고출력 전자파 측정 응용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EMP 측정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5G플러스팀은 초고출력 전자파 펄스 측정기술 고도화와 함께 이 전례 없던 표준 측정기술의 민간 영역 보급을 위한 방안 찾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초고온·진공의 극한환경으로 전자기적 상태 진단이 쉽지 않은 반도체 식각장비 진단, 실시간 전력 모니터링, 중국 어선의 불법어획 추적 기술 등이다. 초고출력 전자파 펄스 측정기술을 통해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게 되길 기대한다.

이동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자파표준그룹 책임연구원 dongjoonlee@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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