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리소그래피)은 빛으로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이다. 회로가 미세할수록 반도체 성능이 좋아지고 한 웨이퍼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칩(다이)수도 많아 생산성이 높아진다. 현존 최고 노광 기술은 극자외선(EUV)을 광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13.5나노미터(nm) 빛 파장으로 기존 193nm의 불화아르곤 액침(ArFi) 노광보다 미세한 회로 패턴을 그릴 수 있다. 차세대 EUV 노광 공정 기술은 '하이 NA(High NA)' EUV로 손꼽힌다. 빛의 집광 능력을 키워 보다 미세한 회로 구현이 가능하다.
반도체 노광 공정의 역사는 빛 파장 단축과 궤를 같이 한다. 1980년대 수은으로 0.8마이크로미터(㎛) 수준 빛 파장을 구현했는데, 현재 대세는 193nm의 ArFi다. 빛 파장이 짧을수록 미세한 회로 선폭을 구현할 수 있다. 반도체 제조업계에서의 치열한 '나노 경쟁' 역시 빛 파장 길이와 직결된다.
아직 시장 점유율은 높지 않지만 최첨단 반도체 공정에는 EUV가 활용된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만 생산할 수 있다. 독점 공급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인텔 등이 EUV 장비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이다. ASML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독일 광학 명가 칼 자이스와의 협업도 ASML의 앞선 EUV 기술 확보에 기여했다.
현재 ASML EUV 장비의 렌즈 NA(개구수)는 0.33이다. NA는 빛의 집광 능력을 나타내는 수치다. NA가 높을수록 렌즈 해상력이 높아져 반도체 노광 공정 시 초미세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 ASML 자체적으로 0.33 장비는 '로우(low)'라고 평한다. 즉 NA가 낮다는 의미다. ASML는 기존 0.33 NA의 한계를 극복, 보다 초미세회로를 구현할 수 있는 0.55 NA 장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하이 NA' EUV다.
업계에서는 2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공정에서는 0.55 NA가 필수라고 본다. 이 때문에 ASML이 언제 하이 NA EUV 장비를 출시할지, 누가 먼저 도입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ASML은 이르면 내년이면 첫 하이 NA EUV 장비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 NA EUV 장비를 도입하기로 공식화한 기업은 인텔과 TSMC다.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도입 일정을 밝히지 않았지만 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한 하이 NA EUV 장비 활용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ASML은 하이 NA 장비 개발을 위해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 벨기에 아이멕과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반도체 제조사와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 NA EUV 장비가 가져올 반도체 업계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NA가 높아지면서 EUV 노광 공정에서 사용하는 공정 필수품 펠리클과 각종 소재 변화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피터 베닝크 ASML CEO는 “지난 1년간 하이 NA 기술 개발 과정에서 자신감을 느꼈다”며 “하이 NA 장비가 2025~2026년께 본격 양산·보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