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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서명으로 발효된 반도체와 과학법(CHIPS & Science Act)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미국의 글로벌 과학연구와 기술혁신 리더십을 강화하는 한편 지역혁신과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의 새로운 혁신성장 모델을 담고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반도체 분야 70조원을 포함 총 370조원 연구개발 투자, 미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투자하는 기업에 10년 동안 25% 세액공제를 통한 총 32조원 지원, 투자 기업당 최대 4조원을 지원하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등 내용을 담고 있다. 반도체 분야 투자 70조원과 세액공제 32조원 투자는 확정했고 추가 연구개발 투자도 매년 의회에서 승인하도록 해 미국 연구개발 투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역혁신과 균형발전을 위해 20개 지역 기술혁신 허브 구축에 134조원을 투자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실리콘밸리·보스턴·뉴욕·시애틀 등 몇 곳의 혁신클러스터에 첨단기술과 인프라 투자가 집중돼 있으며, 그것도 백인 남성 위주로 구조화돼 있다. 이제 지역 균형 경제발전을 강조하면서 지역 기술혁신 허브를 통한 새로운 지역혁신모델을 시도한다. 지역 기술혁신 허브는 지역 산·학·연·관이 참여하는 공공-민간 컨소시엄 형태로 구축된다. 연방 정부는 지역별로 기술혁신 허브를 구축하고 지역 주도 성과관리와 자생적인 혁신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새로운 균형발전과 지역혁신의 경로를 구축하려는 의도다. 특히 여성, 유색인종, 지역 커뮤니티의 지역혁신 참여를 확대해 지역혁신의 자생적·내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것도 중요한 정책 변화다.

또 다른 반도체와 과학법의 특색은 중개연구 개념을 확대하고 역할을 강화하는 조직 개편과 연구개발 인프라 혁신을 시도하려는 점이다. 과학재단에 기술혁신파트너십(TIP) 책임자를 두고 실증 평가 및 사업화 지원 인프라를 확충해서 기초연구 및 원천기술의 사업화를 촉진하고, 인공지능·반도체·양자·탄소중립 등 신기술 신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술혁신 트렌드가 융합과 지역 밀착혁신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개연구는 지역 기술혁신 허브와 함께 지역혁신생태계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지역 기술혁신 허브와 중개연구 모델은 과감한 투자 규모와 방식에 있어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미국은 앞으로 5년 동안 늘어나는 총연구개발 투자 가운데 과학기술 기반 지역혁신에 40%를 투자하고 지역이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관리하며 혁신을 추진하도록 하는 등 균형발전과 지역혁신을 통한 미국의 기술패권 강화 전략이 시행된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는 총 100조원을 넘나들고 있고 국가연구개발예산은 30조원에 이르고 있으나 지역 주도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과 투자는 1조원에 불과하다. 600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에 균형발전을 위한 균특회계는 10조원이다. 국토 면적의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연구개발비의 70%, 인구의 50%가 몰려 있다. 이것은 초저출산의 핵심 원인이 되면서 지방소멸과 국가 생존 위협도 커지고 있다.

수도권 과밀과 초저출산의 유일한 해결 방법은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지역 기업과 산업을 살려 좋은 일자리 및 정주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대기업·수도권 중심 혁신성장 모델을 지역 주도 혁신성장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국의 반도체와 과학법으로 추진하는 지역 기술혁신 허브 전략과 중개연구 모델은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의 강점 분야 중심으로 권역별 지역 기술혁신 허브를 구축하고 지역 기반 기술 실증 사업화를 촉진하는 개방형 중개연구 모델을 접목하여 시너지를 내면 지역혁신을 통한 국가의 새로운 혁신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파괴적 혁신의 과감한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 yjko@d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