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반도체 IC 투자기금 설립
최근 2년간 정부 지원 업고 성장
엔지니어, 특정 SW 의존도 높아
자국 팹리스 확보가 변수될 듯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위해 독자적인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툴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첨단 공정용 EDA 툴 수출을 제한한 결과다. 이미 다수의 EDA 툴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전문 매체 '세미컨덕터엔지니어링'이 매달 발표하는 반도체 스타트업 펀딩 현황을 집계한 결과 중국 EDA 스타트업은 올 한 해(1~7월)에만 최소 17억1100만위안(약 340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여개 스타트업이 적게는 100만위안에서 많게는 11억위안을 펀딩했다.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곳은 유니비스타이다. 6월 IDG캐피털, CAS인베스트먼트와 차이나오토모티브칩스연합 등으로부터 11억위안을 투자 받았다. 이들 스타트업의 비공식 투자까지 고려하면 펀딩 금액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눈여겨볼 것은 중국 EDA 툴 업체가 설립된 시점이다. 대부분 2020년에 회사를 만들었다. 2020년은 중국이 2041억5000만위안(39조8000억원) 규모의 '제2기 국가 반도체 집적회로(IC) 투자 기금'을 설립한 이듬해이다. 2014년 1기 IC 투자 기금은 반도체 생산 능력 확보를 위한 공장(팹) 등 제조에 집중됐다. 2기 펀드는 반도체 자급력을 높이기 위해 공정 장비와 설계 소프트웨어(SW)에 주로 투입하고 있다.
중국 EDA 스타트업 투자는 2기 투자 기금이 다수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역량이 부족한 EDA 툴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포석이다. 이미 미국의 견제 조치가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중국의 반도체 EDA 툴 자생력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2020년 '14차 5개년 계획 및 2035 중장기 목표'에서 반도체를 중점 과학기술 분야로 선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4차 계획의 일환으로 EDA 툴을 포함해 소재, 장비, 첨단메모리, 3세대 반도체 개발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세제 지원 지원책도 등장해서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다수의 EDA 툴 스타트업이 태어났다. 일종의 EDA 툴 국산화다. 이들 회사가 설립 당시 중국에 진출한 시높시스, 케이던스 등 글로벌 EDA 툴 업체 임직원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X-에픽은 2020년에 시높시스 차이나의 임원 출신이 설립했다. 이후 케이던스에서 연구개발(R&D) 고위임원도 채용한 바 있다. 상하이 허젠 인더스트리얼 소프트웨어도 설립 당시 시높시스 차이나의 고위 R&D 임원이 합류했다.
대규모 투자에 힘입은 중국 EDA 툴 생태계가 연착륙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에서도 시높시스, 케이던스, 지멘스EDA 등 글로벌 상위 3개사가 80%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 EDA 툴은 엔지니어의 특정 SW 의존도가 높은 만큼 기존 제품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다만 중국 EDA 툴 업체가 자국 내 팹리스 고객사만 다수 확보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건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 정책에 따라 팹리스가 자국 EDA 툴 전환에 대거 나선다면 기존 시장 판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하지 못하더라도 자국 내 독자 생태계는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EDA 툴 시장은 2020년 66억2000만위안(1조2870억원)이며, 오는 2026년에 100억위안(1조945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중국 EDA 스타트업 펀딩 현황]
자료 : 세미컨덕터엔지니어링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