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A4용지 없는 尹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후 대통령실 화제는 'A4 용지'였다. 윤 대통령이 모두발언 때 A4 용지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냈다는 자찬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윤핵관'은커녕 '윤핵관 호소인'이라고 평가절하된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A4(용지)만 보고 읽던 어떤 대통령과는 차원이 다르다. 종이도 프롬프터도 없이 이게 가능하다”고 극찬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에 견줄 만한 박 의원의 낯 뜨거운 충정은 그렇다 치자. 대통령실이 자찬한 이유를 살펴보면 일견 납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후보 시절 TV조선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프롬프터가 오작동하자 약 1분 20초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설과 관련해 이미 '망신살'이 뻗친 적이 있었다. 다행히(?) 9개월이 지난 지금 윤 대통령은 A4 용지나 프롬프터 없이 20분 동안 연설을 끊어짐 없이 성공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일상화한 도어스테핑, 한·미 정상회담과 나토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외교행사 및 국내 일정 등으로 윤 대통령이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광복절 메시지를 직접 쓰는 등 윤 대통령의 노력과 의지가 더해진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당의 내홍이 여전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겨울 당내 중진과 '윤핵관' 등을 겨냥해서 불만을 터뜨렸고, 윤 대통령도 직격했다. 이 전 대표가 직접 '윤핵관'으로 지목한 이철규 의원을 두고 당시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충돌했다. 대선을 앞두고 '무운을 빈다'며 잠행했다. 지금 상황도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고 당시 이 대표 퇴진을 논의했지만 이 대표가 사과하고 윤 후보가 의총장을 찾아 '내 탓'이라고 사과하며 일단락됐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는 인사 난맥과 함께 분열된 여권 갈등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도 당내 갈등을 봉합했다. 의지만 있다면 해결할 능력도 갖췄다. 국민의 뜻을 진정 받든다면 정치로 말미암은 피로감은 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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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국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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