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진짜 죽겠다 싶은 심정이니 덤비는 거죠.”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에 대한 홈쇼핑 관계자 대답은 단순 명료했다. 이젠 한계라는 것이다. 작년부터 가속화된 홈쇼핑 산업 침체는 상반기까지 이어지며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홈쇼핑과 주도권을 쥔 플랫폼 간 수수료 대립도 극에 달했지만 역할을 해줘야 할 대가검증협의체는 깜깜무소식이다.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업자 간 분쟁 예방을 위해 가이드라인에 '홈쇼핑 송출료 대가검증협의체' 운영 근거를 마련했다. 객관적 검증을 통해 공정한 계약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지만 2년이 넘도록 단 한 번 열린 적 없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던 것도 아니다. 홈쇼핑과 유료방송사는 매년 수수료 인상폭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고 올해는 깊어진 갈등의 골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 블랙아웃(송출중단) 직전까지 갔던 CJ온스타일과 LG헬로비전 간 수수료 갈등이 대표적이다. 과기정통부가 뒤늦게 중재에 나섰지만 협상 데드라인마저 넘기자 업계에선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번졌다. 다행히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며 파국은 면했지만 이번에도 대가검증협의체는 열리지 않았다.
사실 대가검증협의체가 유명무실했던 이유는 모두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구조 특성상 방송채널 의존이 절대적인 홈쇼핑 입장에선 '갑'인 유료방송사를 적으로 돌릴 순 없었다. 유료방송 입장에서도 자칫 협의체에서 수수료 대가가 불합리하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불리한 선례가 생기는 셈이니 괜히 나설 이유가 없다. 야심차게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과기정통부도 새로운 협의체 가동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구체적 시행세칙이 없다는 점이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간과 대상, 처리 기한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협의체가 열렸을 때 전문 위원 구성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중립적 검증 기준은 무엇인지 사업자는 알지 못한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분명 송출료 분쟁이 있을 시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인데 정작 사업자는 정부 눈치만 보는 것이다.
올해는 기류가 변했다. 어느 때보다 대가검증협의체가 열릴 공산이 커졌다. 벼랑 끝에 선 홈쇼핑 업계는 지금의 송출료 협상이 적정한지 검증 받길 원한다. 상반기가 훌쩍 지났지만 홈쇼핑과 유료방송은 여전히 수수료 인상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지금은 첫 사례가 부담돼 망설이지만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걷잡을 수 없다.
정부도 언제든 대가검증협의체를 가동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산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외부에서 봤을 때도 합리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더 이상 송출료 갈등을 사적 계약으로 치부해 외면해서는 안 된다. 소모적 갈등 상황만 초래해 방송 산업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